죽지 못해 살지만 살기에는 죽고 싶었던 날들
우울이 깊을 때, 늘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왜 살아야 하지?
삶이 너무 힘들어 죽고싶기도 했지만 죽는건 무서웠다.
그렇다고 납득이 되지 않는 삶을 이해하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모든 일에 이유를 찾고, 납득이 되어야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그냥 살아가는 것’은 늘 어려웠다.
어느 날,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지구는 지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전생에 죄를 지었고, 벌을 받으러 이곳에 왔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렇게 나는 죽으면 안되는 이유,
이 세상에서 ‘그냥‘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 나만의 스토리로 납득해 가기 시작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와야 할 이유가 있고,
내가 받아야 할 벌을 묵묵히 치르며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죽고싶은 날들은 이런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살인인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살 역시 또 다른 살인의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죽을 수 없었다.
혹여 다음 생에서 더 큰 벌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나의 죄를 청산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그 마음은 조금은 다른 형태의
희망이 되었다.
사주 명리학에서는,
우리는 타고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 운명은 단순히 정해진 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되고,
누군가는 삶을 기록하고자 작가가 되며,
누군가는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사업가가 된다.
그리고 나 역시도 죽을 수 없기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야만 했던 나만의 이유를 그리고 직업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