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찬 Feb 10. 2023

자발적 실패

불펜의 시간- 김유원

짧은 소설책이었다. 주인공 세 명이 각각의 관점으로 이어지는 세계관에 살고 있는 이야기의 그런 책. 한때는 고교리그를 재패했던 투수지만 지금은 1이닝에서 많아야 2이닝, 9회에 등판하면 어김없이 볼넷을 남발하는 불펜투수 권혁오, 그런 혁오와 중학교를 같이 나왔지만 야구를 포기하고 회사원의 삶을 살아가며 사회의 악취를 견디는 준삼, 초등학교 때 야구를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진학을 포기하고 스포츠기자가 돼 제대로 된 기사를 싣기 위해 달리는 기현. 이 셋의 삶을 보며 왜 우리 삶에 불펜이 필요한지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제목으로 짐작하듯 책에서는 야구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는 삶과 야구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스포츠 종목에서 반영되는 승패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승부조작을 다룸으로써 기회를 잡으려고 애쓰던 우리들에게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승부조작이라는 주제로 풀어나간 이야기는 한때 잘 나갔어도 지금은 기회를 잡기 위해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말하는 불펜은 야구장 구석에 있으며 선발투수 다음에 등판할 투수들이 몸을 푸는 곳인데 야구장에는 선발투수만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제목을 통해 말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선발투수와, 선발투수 자리를 꿰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전 글인 <물에서 헤엄치는 거북이의 발처럼>의 내용과 겹칠지 모르겠다.  


앞에서 소개한 세 명의 인물은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회사원, 불펜투수, 여기자의 모습을 그려낸 김유원 작가는 이들의 입을 빌려 '자발적 실패'를 말한다. 사회의 악취를 견디는 회사원 준삼은 노조에 가입했다 해코치 당하는 게 두려워 회사에 줄을 서 안정적인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사회의 악취를 견디지 않기 위해 본인의 손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준삼의 행동은 어떤 행동이었을까? 기회를 잡으려고 애쓰던 말단 회사원이었지만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는 없다 느낀 그가 사회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반항이 아니었을까?


비단 준삼뿐이 아니다. 볼넷을 안 줄 수 있는 자세와 실력을 갖춘 혁오는 오래전 죽은 친구 진호의 일에 후회를 하며 일부러 볼넷을 던진다. 타자가 타석에 서면 친구의 얼굴이 겹쳐 보이고 결국 도망치는 승부를 하게 된다.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친구였지만 실력이 되지 않고,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자신의 앞에 서자 그는 친구가 좋아하겠지라며 일부러 도망가는 승부를 한다. 혁오는 이에 몰입해 진호리그라는 본인만의 상상 속 리그를 만들어 최다 볼넷상, 연속 무탈삼진상 같은 시상식을 연다.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혁오는 도망친 것이다. 이에 승부조작 의혹을 받고 기현을 만난 혁오가 한 말이 <불펜의 시간>이라는 소설을 보여준다. "이기는 게 중요한가요? 얼마나 중요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할까요? " 모두 승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서 혁오는 자신의 세계만에 서라도 프로가, 다시 말해 승자가 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볼넷을 주고 스스로 무너진다. 혁오의 자발적 실패다. 


기현의 이야기 역시 다루고 싶지만 줄거리 위주로 다루는 것 같아 간략히 넘어가도록 하겠다. 기자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던 그녀는 기자의 소신을 지키려다 윗선의 압박을 받아 현실과 싸우게 된다. 혁오가 승부조작을 한 게 아니란 기사를 내려 하지만 실패해 결국 언론사를 나와 개인 sns에 글을 올려 세상과 마주한다. 


이 셋의 공통점은 '자발적 실패', 이길 수 있음에도 이기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선발투수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의 최전방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해 오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경기를 시작하는 선발투수, 경기를 끝내는 마무리 투수처럼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들에 비해 확실한 위치가 보장되지 않는 불펜투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승리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과연 이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기는 게 중요할까?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 그 무엇보다 중요할까?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겠다. 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나는 기회를 안 잡을 수 있을까? 하지만 준삼, 기현, 혁오는 이 질문에  대답한 듯하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승, 패, 탈삼진, 평균자책점으로만 구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회는 이들은 반기지 않는다. 이들도 사회를 반기지 않는다. 이들은 자발적 실패를 통해 저항한다. 이 '자발적 실패'는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같은 색의 피가 흐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