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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Feb 05. 2023

같은 색의 피가 흐른다.

깻잎 투쟁기- 우춘희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알맞은 시기인 방학,  연구활동가 우춘희가 쓴 <깻잎 투쟁기>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환경 실태와 그에 맞서는 활동가들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우선 글을 제대로 쓰기 전에 말하자면 이번 글은 조금 감정적으로 쓰일 것 같다. 여타 다른 글들은 '나'라는 주어를 쓰되 보다 객관적으로 쓰려 노력했지만 이 글은 사회의 잔인함에 대해 쓰는 만큼 감정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니 양해를 구하겠다.


하루에 깻잎 15,000장.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한 명이 채워야 하는 할당량이다.  일하는 시간은 10시간 이상, 월급은 160만 원 내외, 휴일은 3일, 기숙사(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비 25만 원에다 심지어 2,000만 원이 넘는 임금을 체불당한 노동자도 있었다. 숫자로 모든 걸 정리할 수 없는 건 안다. 그런데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대한민국 농촌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다. "외국인 없으면 농사 못 짓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고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이 하기 힘든 일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맡기면서 이윤은 모조리 가져가 버리는 사회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땐 다양한 반찬이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김치는 누구의 손을 거쳐서 왔을까?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오른다. 이 말인즉슨 부당함을 통해 나온 그들의 눈물이 우리의 밥상에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다. 책에서 알려진 사례들이 생각나며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 건 그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제는 조금 더 멀리 세상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조금은 낯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도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으니까.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알고만 있었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모르고 있었다. 앞서 말한 임금체불 외 사례들이 한국 사회에서 수년 간 일어난 일이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이야기와 삶이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야 간단하다. 그들은 고립되어 있었으니까. 코로나가 빗발치던 2020년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책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이 정책이 의미가 없었다. 기껏해야 한 달에 3일밖에 못 쉬는데 그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면 몇 명이나 만나고 나가면 또 어딜 나갈까. 이주노동자는 농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사회적 고립이니 역설적으로는 코로나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들인 것이다. 


분명 사회 어딘가에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이들은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한다. 책에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는 이들을 보호하기보다 구속하여 노예와 같은 상태로 만든다."는 말이 나온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면 악덕 고용주는 "너 불법 만들 거야"라는 말을 하며 입을 다물게 만든다. 이주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할 수밖에. 이 '불법체류자'라는 표현도 수정될 필요가 있다 느꼈는데 책에서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전부터 국제사회단체에서는 표현에 관한 문제점들을 제기해 왔다. '불법'이라는 말이 그들을 불법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차별과 혐오를 조성한다는 이유였다. 또한 초과 체류의 문제는 형사상 범죄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에게 불법 운전자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 돼선 안 된다. 참고로 책에서는 '미등록', '비정규' 같은 중립적인 용어를 제시했다. 


나는 이주노동자들이 당하는 부조리가 차별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이들이 차별과 폭언, 성희롱 등을 당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대한민국에서 일을 하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이를 예상한 듯 저자 우춘희는 이 말을 던진다. "이주노동자가 온다는 것은 사람이 오는 일이다. 그의 손과 함께 삶과 꿈도 온다." 그들도 사람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피부색, 살아온 환경, 언어 같은 것들이 우리와 다를지 언정 피부를 갈라 보면 빨간 피가 쏟아져 나온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사회가 만들어저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공존, 곧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필요한 사회다. 이러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이주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누군가를 배제한다면 자신도 그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와의 인터뷰 중 한국 사회는 돈만 우선시한다는 표현이 나왔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옆에 있는 이주노동자가 사람이라는 걸 까먹고 무시하고 깔보는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평등하다. 돌아보면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곳에서 이들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난이 싫어 대한민국으로 와서 우리가 싫어하는 일을 하며 자신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밥상에 오른 것들엔 이주노동자들의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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