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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Mar 23. 2023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한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이 일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일본 최고의 스타 오타니 쇼헤이는 메이저리그 팀 동료이자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라고 불리는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일본의 우승을 확정 지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진한 감동을 느꼈다.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영화 같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조기 탈락하는 바람에 흥미가 떨어질 뻔했으나 WBC참가국들의 스토리가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번 WBC는 한국의 경기력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저히 국가대항전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플레이가 많이 나왔으니 화도 나고 한편으론 실망했을 것이다. 이런 비판도 결국 애정이 있어서 하는 것인데, 과연 이 애정은 어디서 나올까? 정확히는 어디서 어떻게 비롯될까라는 질문이 맞을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계속 반복되는 우리의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일과가 반복되는데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반복되는 일상을 즐길 수 없는 우리들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넓히는데 그게 바로 스포츠다. 스포츠 경기는 우리의 삶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하다. 같은 팀의 경기를 보더라도 경기의 내용은 항상 다르고 예측을 불허한다. 심지어는 1위 팀이 꼴찌팀에게 질 수도 있다. 이런 스포츠가 주는 반전 덕분에 우리는 각 구단을 응원하고 선수를 응원하며 스포츠를 즐긴다.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며 생각지도 못한 드라마가 쓰인다면 (특히 야구) 우리는 감동을 느끼고 대리만족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 끓어오를듯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스포츠를 즐긴다. 


게다가 이번 WBC 같은 국가대항전 경기는 대한민국 10개 프로야구팀 팬들이 모두 대한민국을 응원하면서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한 마음으로 응원하며 그 감동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한일전 대패,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팬들은 애정에서 비롯된 비판을 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조심스럽지만, 1라운드 호주전에서 강백호 선수가 세리머니를 하다가 베이스에서 발을 떼 아웃된 일이 있었다. 태극마크라는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갔지만 그걸 가볍게 여긴 채 플레이한 모습은 내가 봐도 너무나 아쉬웠다. 찬스가 계속될 수 있었음에도 흐름이 끊겼기에 대한민국은 아쉽게 질 수박에 없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팬들의 비판이다. 정도가 넘은 '비난'이 아니다. 내가 앞서 상술했듯 우리는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에서 극적인 드라마가 쓰인다면 기뻐하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지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강백호의 장타는 드라마 각본의 첫 장이 될 수도 있었다. 드라마가 쓰이지 못해서, 다시 말해 분위기가 넘어오는 그 순간을 느끼지 못했기에 팬들은 아쉬워했다. 


내가 여기서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꼭 극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분위기가 넘어오거나 선수들의 투지가 보여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될 때의 그 순간이었다. 이 순간은 스포츠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거라 생각되는데 우리는 이런 순간이 좋아서, 또는 기다리기 위해 스포츠에 애정을 갖고 경기를 지켜보게 된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몰입했을 때 드라마가 쓰인다면 그 사람은 스포츠에 진한 감동을 느끼고 흠뻑 젖어들게 된다.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한다. 나는 이번 WBC에서 체코라는 팀을 좀 더 알아보았다. 야구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체코는 이번 WBC에 나오기 위해 이미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고 쪼개 연습을 해서 나온 국가이다. 야구 변방 국가라고도 하는데, 체코 대표팀의 대학교수, 소방관, 고등학교 교사 등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수많은 야구 강국들을 상대로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낭만 야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번에 우승한 일본과의 경기에서 졌지만 오타니 쇼헤이를 삼진으로 잡고 그 공을 기념으로 챙겨 기뻐하는 투수의 모습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프로리그가 없는 국가에서 이런 낭만 야구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체코 선수들의 신념 덕분이었다. 


믿음이 주는 감동도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야구 대표팀의 일화다. 김경문 감독은 당시 부진하던 이승엽을 계속해서 기용했다. 오죽하면 이승엽이 라인업에서 빼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승엽은 일본전에서 8회 결승 2점 홈런을 날리며 믿음에 부응했는데, 이때 대한민국은 흥분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방금 전까지 이승엽 말고 다른 타자를 내보내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기뻐하고 모두가 감동을 느꼈다. 스포츠에 열광했다. 이런 기적 같은 상황이 감동을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해 우리는 기대를 하게 된다. 기대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끓어오르듯 기쁘니까. 한국 야구에서 약속의 8회라는 말이 생긴 근본적 이유다. 팬들에게 감동을, 팬들이 더 열광할 수 있게 애정을 가지고 믿겠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건 믿음에 있다. 이번 WBC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일본이 준결승전에서 승리하는 과정 속에도 믿음이 있었다. 일본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2022년 최연소 트리플 크라운(홈런, 타점, 타율)을 달성했지만 예선에선 유독 부진했다. 그러나 일본 대표팀 감독은 그를 빼지 않았고 준결승에서 4타수 무안타 3 삼진으로 고전하던 그는 4:3으로 지고 있던 9회 말 1, 2루 찬스에서 끝내기 2타점 2루타로 경기를 끝냈다. 스스로 번트를 댈 생각까지 했다는 무라카미와 그를 믿은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국적을 넘어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근 <슬램덩크>가 영화로 개봉해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도 비슷하다고 본다. 예전에 느꼈던 향수를 찾기 위해 영화를 본 사람도 있지만 스포츠와 관련된 애니메이션인 만큼 내가 말한 감동을 느끼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각 인물들의 과거와 경기장에 설 수 있을 때까지의 노력,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하나가 되어 의기투합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겨주기엔 충분했고 그 여운은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드라마를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 덕분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어도 몰입하게 되는 영화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아니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한다. 그렇기에 가끔은 비판을 하고 직접 스포츠에 발을 들이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스포츠와 관련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찾아본다. 우리 삶은 반복적이고 지루하기에 새로운 즐거움이 필요하다.  IMF 때 사람들이 박찬호의 경기에 열광한 것도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우리는 가끔 삶의 도피처로 스포츠를 택하곤 한다. 각자 달라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매력이 스포츠가 주는 감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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