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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Mar 16. 2023

마스크를 벗으니 보이는 것들

전염병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

마스크를 벗게 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했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함과 동시에 서로 간의 왕래도 뜸해졌고, 학교에선 서로의 얼굴을 보러 기웃거리기조차 눈치 보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스크가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게 쉽지 않음에 따라 자연스레 가까워지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자 마스크를 벗는 게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 되었고 마스크가 해제된 지금도 여전히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오늘의 글은 마스크를 벗으니 보였던 사람들이다.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자 학교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2019년에 학교에 입학한 나는 졸업학년이 되어서야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마스크를 벗으니 사람들이 보였다. 정확히는 마스크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마스크가 해제됨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전염병 이전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은 전염병 이전의 삶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땐 너무 어렸다. 


지난해, 확진자가 급증하고 실외 마스크가 해제될 무렵, 담임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결국은 우리가 안고 갈 수밖에 없으며 차라리 여러분이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대라는 걸 인지하는 게 나을 것이다. " 왜인지 찡했다. 당시엔 학교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을 것 같았고 내 삶에 얼마나 커다란 타격이 갈지 걱정되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대. 너무나 암울하지 않은가.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정도면 우리 모두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단 것을 인지할 수밖에. 절망적이었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마스크를 벗으니 잊고 지냈던 모습들이 보인다. 사람들의 코와 입이 보이는 걸로 시작해 서로의 입모양만 보고 소통할 수 있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누군가의 코에 삐져나온 코털과 입에 낀 고춧가루마저 보인다. 너무나 당연하게, 아니 계속 볼 것만 같던 이 풍경을 무려 3년 만에 보았으니 말하진 않아도 무척 반가웠다. 우리가 보기 힘들어진 모습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마스크를 벗고 지내며 웃고 떠드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추억이 될 그 기억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게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어느 새인가 사진첩을 보면 마스크를 쓰고 찍힌 사진만 가득했다. 그런데 이제는 활짝 웃는 입과 서로의 다양한 표정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예전에 서로의 웃는 모습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이젠 더 자세히 들여다볼 게 분명하다.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이렇게나 행복한 일일 줄 몰랐으니까. 이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서로의 얼굴과 그 안에 깃든 여러 감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폐쇄적으로 변한 것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 그리고 마스크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짧은 영상 매체의 유행, 생각의 깊이가 줄어든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는 집 안에만 있으며 미디어로만 세상을 졉하고, 나간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깊게 만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한 번은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친구에게 제대로 쓰라는 말을 했다. 얼굴을 보지도 않고 의무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말하고 나서 의문이 들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전염병이 없었으면 내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됐고 서로 간의 갈등도 없었을 게 분명하다.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마스크를 쓰고 귀가 까져야 하는지, 전염병에 굴복한 것인지 친구에게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딘가 낯설었다. 지금이야 흘러간 과거가 되었지만 마스크를 벗고 지내는 요즘은 이때가 계속 생각난다. 


이제는 보인다. 마스크 안에 담긴 서로의 모습이. 마스크에 가려진 채 보았던 사람들의 즐거움이 말이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대였던 우리는 이젠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때까지 버텨낸 세대가 되었다.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이런 전염병 사태가 없었다면 내가 이런 사유를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전염병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마스크 없이 일상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내가 그런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제야 돌아보는 게 부끄럽다. 전염병이 없었다면 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어쩌면 지구는 우리에게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으면 안 된다. 마스크를 벗게 되자 알게 되었다. 지긋지긋했던 3년 동안의 경험. 경험이란 말이 깊게 와닿다 못해 소름 끼치기도 한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는 전염병 사회를 몸으로 겪으며 마스크 너머의 사람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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