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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May 25. 2023

승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존중하지 않는 야구계 시리즈 1-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관람

햇살은 뜨거웠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은 눈에 띄게 얇아졌다. 여름이 자기가 다시 찾아왔음을 알리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기장은 저 멀리 있어 조그맣게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커졌다. 경기장이 커지는 동시에 경기장 안에서 들리는 파이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면 탈락해야 하는 청춘들의 열정은 우리에게 전율을 일으킨다.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대회 8강전을 준비하는 부산고와 배재고의 모습이 그랬다. 야구를 향한 청춘의 모습은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이토록 매력적인 스포츠인 야구를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누가 재미를 느끼지 못할까. 그러나 나는 이번에 야구를 야구로만 보지 않았다. 야구를 인간적으로 보았다. 야구장 안에 있는 선수들, 감독의 모습과 함께 관중석에 앉아 있는 수많은 학부모들, 그리고 내 주변에 앉아 있었던 프로구단 스카우터와 경기 기록원들, 기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구속이 얼마나 나오고, 어떤 작전이 나오고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이날 유심히 봤던 건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나는 야구를 경기적인 측면으로만 보지 않고 야구장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고 결심한 상태였다. 어느 쪽을 응원하지 않고 내가 야구를 해올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싶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프로야구 경기를 볼 때 비싸서 앉지 못하는 자리를 고교야구 경기를 보면서는 앉을 수 있었다. 야구계 관계자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어 스피드건과 노트북을 꺼내 들었고 경기를 지켜보았다. 이들은 야구를 보았고 나는 사람을 보았다. 사람을 이렇게 강조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2023년 <황금사자기>는 로봇시심판이 첫 선을 보이는 대회였고 이날 경기 전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기에 관심이 좀 있었다. 로봇심판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지만, 예전처럼 심판이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판이 경기를 지배하지 않는 모습은 좋게 보였지만, 오히려 로봇이 경기를 지배한다는 표현을 썼을 때는 조금 거북한 감이 들었다. 


다시 돌아와서 경기를 지켜보며 청춘들의 열정을 보았다. 프로야구에서 보기 힘든 1루까지의 전력질주는 기본이고, 자신들이 팀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흐름이 끊겼을 때도 친구를 다독이고, 흐름을 끊은 선수는 미안하다는 듯이 더 크게 응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투수가 몸 맞는 공으로 타자를 내보냈을 때도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게 먼저라는 것을 먼저 행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흔히 '말하는 최선을 다 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 하면 좋겠다.'라는 한 번쯤 들어본 말이 아니라 '승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라'라는 메시지로 해석되었다. 


게다가 팀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선수들의 기록을 책임지는 선수, 관중석에서 상대 배터리(투수와 포수)의 패턴을 알려주는 선수,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장비를 챙기고 배트와 주루 장갑을 전달해 주는 선수들은 모두 박수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먼저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는 건 안다. 감독이나 코치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팀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마음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것이다. 조금이라도 팀이 이길 확률을 높여주기 위한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력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악습 관행은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조금 어려웠다. 어른이란, 아이가 모르는 가치를 알고, 그 가치가 무엇인지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경험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이런 어른의 조건에 부합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야구 관계자는 그 뒷자리에 앉은 사람과 언쟁을 벌였다. 어른이니 뭐니를 운운하며 경기장까지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고등학생도 아직은 학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무리 야구를 잘한다고 해도 아직은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한 이들이 야구계 선배라는 어른들을 보고 무엇을 배울까. 그동안 보여줬던 상대에 대한 존중, 팀플레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하면 싸워서 이길지를 배울 것이다.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건 과연 그것밖에 없었을까? 


존중하지 않는 야구계의 문화도 몇몇 어른들 때문에 만들어졌다. 툭하면 언쟁을 벌이고 싸우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야구계다. 청춘의 열정과 낭만이 가득한 고교야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수들은 눈치를 보기 바쁘고, 어른들은 누가 맞고 틀린지 설전을 벌이기에 바쁘다.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 덥고 짜증 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듯 언성을 높이면, 배우는 사람들은 학생은 무엇을 배우는가. 이런 무책임한 모습이 지금의 야구계를 만들지 않았는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승리해도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게 학원스포츠의 목표 아닌가? 일본의 국가대표 감독 구리야마 히데키는 "야구인으로서 성공하기보다 인간으로서 성공하기를 지향한다."라고 말했다. 


청춘의 열정과 노력하는 모습은 눈에 담아 갈 수 있었지만, 서로를 헐뜯는 어른들의 모습은 눈만이 아닌 귀로도 담겼다. 야구는 삶을 보여준다. 자신이 홈런을 많이 친다고 해서 같은 팀 투수에게 홈런 좀 쳐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모두가 같은 야구인이고 각자의 일이 다른데, 왜 그러는가. 유망주는 무엇을 보고 자라야 할까. 어쩌면 내가 단단히 박힌 돌만 건드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박힌 돌에 이끼가 가장 많을 수밖에.


존중이 사라진 야구계 사이에 인간성이 희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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