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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Jan 21. 2023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졸업식, 장례식으로 인연이 무엇인지 돌아보다.

근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방학이지만 내 윗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을 준비하러 학교에 나갔고 졸업식이 끝나고 글을 쓰려던 찰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들이 내가 어떤 글을 쓰며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무슨 일이든 경험으로 배우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여기에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번 글에서는 내가 겪은 일들을 통해 인연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려 한다.


내가 다니는 대안학교에서의 졸업식은 아주 중요한 행사다. 청소년기에 대안교육을 받고 졸업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할 일이며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을 안고 사회라는 배움터로 나가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선생님들만 준비하는 게 아닌 재학생 전체가 참여한다. 이번에 졸업하는 기수가 13기인데 이 13기 선배들 11명에게 50명 가까이 되는 재학생들이 각자 손 편지를 써주고 다 함께 합창 연습을 하며 졸업식을 준비한다. 나 역시도 이 과정에 참여했으며 2023학년도 학생회장에 당선돼 학생들을 대표해 졸업 축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 축사를 쓰며 인연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축사를 쓰려니 말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내 바로 위(나는 14기다.)에 있었고 함께 놀며 학교생활을 즐기게 만들어준 이 선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고심한 끝에 나는 '인연'이란 단어를 축사에 넣어 글을 썼다. 다음은 내가 쓴 축사의 일부분이다.  


13기와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고 졸업은 먼 훗날인 줄 알았지만 점점 가까워지자 저는 이 순간이 영원하길 내심 바라곤 했습니다.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영원하길 바라는 것. 그것이 배움터길의 인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배움터길'은 내가 다니는 대안학교의 이름이다. 축사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인연의 뜻을 여기에 내비쳐 봤다.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는 선배들이 졸업할 줄 알았다.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4년 동안 함께 있었던 선배들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배들과 영원히 학생 대 학생으로 만나길 바랐다. 다시 말해 나는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영원하길 바랐다. 


내가 쓴 축사를 읽으며 왜인지 모르게 감정이 북받쳤다. 내 앞 순서에서 축사를 한 졸업생 형은 자신의 졸업식에서도 울지 않았는데 울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졸업생인 그 형은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13기 선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기도,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기도 했다. 나는 그 심정을 모르지만 알 것 같았다. 떠나보내는 건 참 어렵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수록 더 그렇다. 


졸업식 때 매년 나오는 말이지만 '이 기수가 없는 학교는 상상이 안 간다.'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와닿았다. 이제는 내 기수가 최고 선배이며 이번에 졸업한 선배들만큼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기도 했다. 확실히 무게감은 기울었다. 하지만 학교는 기울지 않았으니 올해를 지내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어색할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의지했던 선배들과 학생 대 학생으로 만날 수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영원을 바랐던 내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공허하기만 하다. 


졸업식이 끝나고 프리허그 시간이 있었다. 차례대로 나와 졸업생들과 한 번 안고 선물을 주는 시간인데 선배들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떠나는 사람도 남아 있는 사람도 할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영원하지 않을 걸 알았다면 영원을 바라기보다 아낌없이, 후회 없이 살았어야 할 텐데. 난 그 사실을 너무나 늦게 알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며칠 뒤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거운 이야기인 만큼 길게 쓰진 않겠다. 앞서 졸업식에서 인연에 대해 생각한 후 얼마 뒤에 있던 일이라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평소에 증조할머니를 자주 뵙지 못했고 가족들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많이 모이진 못했다. 많이 아프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증조할머니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착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소에 뵙지 못했으니 자연스레 소홀해졌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건강하실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이런 상태에서 나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주 예전 내가 6살 때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적이 있다. 그때는 뭘 몰랐던 나이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사람이 아주 많이 왔다는 것. 그런데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은 가족들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밖에는 없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증조할머니와 나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기르시며 재혼하셨다고 들었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 나라도 증조할머니께서 편히 눈을 감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인연'이 있었다. 인연과 죽음을 엮어 생각했으나 명확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아직 생각하는 힘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배움의 실천도 장례식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경험으로 배운다던데 꼭 그랬다. 하지만 나는 반쪽짜리 배움을 했다. 잠깐 옆길로 새서 나는 대안학교의 최고 장점이 자치활동을 통한 주도성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 스스로 무언가를 기획해 나가며 실천하는 것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에서 4년을 지낸 나는 장례식장에서 어떤 것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치활동을 수없이 해봤고 많은 경험이 쌓이며 학교에서는 주도적으로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장례식장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족들이 일하는 걸 지켜만 봤으니 반쪽짜리 배움이다. 학교에서 배운 걸 응용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배움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결국 실천하지 않았으니 극단적으로 본다면 나는 못 배운 사람일 게 분명하다. 아는 것의 실천, 다시 말해 지력(知力)의 실천을 배움이라고 한다면 나는 학교에서 배운 주도성을 통해 장례식장에서 일이라도 거들었어야 했다. 일을 해야 할걸 알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말이다. 결국 중요한 건 누구한테 배웠는지가 아닌 어떻게 써먹느냐였다. 


졸업식 역시도 학교의 교육과정이고 나는 학교를 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 말한 '인연' 역시도 축사를 쓰며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배움을 행하지 못했다. 아직 나의 배움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과 많이 헤어졌다. 다시 볼 수 있지만 같은 공간과 신분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 혹은 아주 먼 시간이 흘러야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인사했다.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영원하길 바랐던 우리를 인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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