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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Jan 09. 2023

학교 앞 황무지

전염병이 사회를 바꿨다.

어느 날 집 밖을 산책하다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까지 가게 되었다. 졸업한 지 이제 5년이 된 모교는 많이 작아져 있었다. 나도 많이 컸다고 느낄 때쯤 이상한 게 보였다. 모래 바닥이었던 운동장 군데군데 잡초가 자라 있었다. 마치 셜록 홈즈 <바스커빌 가의 개>에 나왔던 다트무어의 황무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5년 전에는 온통 모래였고 그 위에는 모래밭을 가릴 만큼의 열정을 가진 초등학생들이 뛰어놀았던 그 운동장이 아니었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해봤다.


모교를 찾을 기회가 적었던 만큼 변화를 한 번에 확 느끼기도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가장 이상하게 느꼈던 건 주말 점심쯤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꼰대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초등학생 시절을 보낼 때는 친구들과 축구하고 야구하며 뛰어놀았다. 그렇게 점심시간과 방학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운동장에 초등학생들이 줄어들었다.


나는 이걸 코로나로 인한 시대의 변화라고 말하려 한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20년에 코로나가 터져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됐지만 핵심은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시대는 변화했고 매체는 더욱 자극적으로 변했다. 나 같은 경우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온라인 수업과 게임, 넷플릭스를 반복하는 생활 루틴이 반복됐는데 이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디어에 빠져 사는 내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생 시절 우스갯소리로 "미래에는 학교 안 가고 온라인으로 수업할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불과 몇 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생각하는 힘이 없어진 게, 나가서 놀기보다 집 안에서 편안하게 누워 미디어와 살기를 선택한 게 말이다. 운동장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코로나의 영향을 받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꼰대 문화. 나는 이걸 잘 알지 못하겠다. 젊은 층, 소위 말하는 MZ세대 입장에서 듣기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꼰대가 되는 건가 싶다. 물론 나도 MZ세대이긴 하지만 모두가 같지는 않다. 칭찬은 듣기 좋지만 좋은 소리는 쓰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 사람의 말이라면 듣기 싫겠지만 이런 사람이 아닌 그저 고쳐야 할 점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사람의 말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이 꼰대라는 단어도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운동장이 황무지가 된 데엔 미디어와 코로나가 쌍두마차를 이뤄 활약했기 때문이다. 비단 운동장뿐인가. 동네 놀이터도 텅 비었다. 모두가 학원 가랴, 게임하랴 바쁘다. 코로나로 인해 근 2년 간 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못했으니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어느 날은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듣게 됐는데 수영이 끝나고 밤 11시까지 수학 학원을 간다고 한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인데 조금은 놀아도 괜찮지 않을까? 공부만 한다면 나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남는 게 있을까?' 등의 생각을 했다. 분명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의 생활이 학원을 가고 게임을 반복하는, 그런 루틴이라면 놀고 싶은 아이들도 여기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빨려 들어갈 수밖에.


미친 세상에선 안 미친 사람이 미쳐 보일 뿐이다. 운동장에 잡초가 피어난 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학원의 바닥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상상도 해봤다. 이상한 비유 같지만 왜인지 두렵다. 우리 사회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니까. 내가 다니고 있는 대안학교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벤트를 열기도 하는데 어린 학년들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라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주로 배드민턴, 풋살 등의 이벤트를 열었지만 학교에 온 지 1~3년쯤 된 후배들은 "그 시간에 게임 한 판 더 하지"라며 참여를 꺼린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점차 폐쇄적으로 형성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이제는 일어날 필요가 있다. 누워서 핸드폰만 하기보다는 나가서 놀며 땀을 흘리면 좋겠다.  


공교육의 고등학생들은 좀 다르다. 최근 초등학교 동창들과 모여 축구를 하러 갔다. 다른 학교 사람들과 경기를 하게 돼 생각보다 판이 커졌는데 그렇게 많은 관중들 속에는 초, 중학생이 없었다. 모두 고등학생, 어른들 뿐이었다. 형들이 무서워서 안 나오거나 혹은 다른 데서 하고 있겠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경기장에 오며 봤던 근처의 체육공원 역시 고등학생, 성인뿐이었고 조기 축구를 하시는 듯한 분들의 대화는 자녀의 입시 문제에 관한 대화였다(물론 경기할 때는 아니다.). 공교육, 대안교육을 막론하고 뛰어 노는 학생들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매트릭스> 같기도 하다. 주인공은 빨간 약을 먹고 진실을 보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선 파란 약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잘못된 세상에서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만 않으면 된다. 빨간 약을 먹고 진실을 향해 목소리를 내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렇다. 전염병이 사람들의 생각하는 힘을 앗아갔고 우리는 미디어의 노예가 되었다. 뛰어놀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미래에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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