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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Jan 04. 2023

일기의 힘

일기 쓴 지 2년이 돼가는 학생이 느낀 점 

중학교 3학년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첫 글에서 언급했듯 중고등 통합 과정인 대안학교인데 중학교 3학년 구성원들은 그해에 들어온 신, 편입생들을 환영해주는 행사를 기획하게 된다. 행사라고 해서 거창할 건 없고 학교의 공간을 활용해 신, 편입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보는 게 적당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학생 수 60명이 채 안 되는 학교에서 13명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대표로 이 기획을 진행했다. 학년마다 반이 하나기 때문에 반장보다는 학년대표라는 호칭이 더 나을 듯싶다.


나는 이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회의를 진행했으며 신, 편입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려면 어떤 방식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해 나갔다. 그렇지만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때가 있기 마련이었고 나는 진행자 또는 대표로서 이런 의견들을 잘 취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행사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생각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진행하는 내 입장에서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2년 전이지만 학교생활이 조금 벅찼던 것 같다.


서론이 조금 길었다. 아무튼 나는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야구부 시절의 코치님께 연락을 드렸다.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 않아 조금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이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랬더니 코치님께서는 '큰 고민을 하고 힘들 때는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도 좋지만 노트에 하나하나 적어 봐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이 내 일기의 시초였다. 집에 빈 노트를 하나 가지고 하루에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웠다. 내가 왜 힘든지를 적어보는 걸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어떻게 나아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며 그런 부분들까지 적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기를 매일매일 쓰려고 노력했다.  


사실 매일매일 쓰는 건 참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일기를 쓰며 내가 부족한 점, 다시 말해 보완해야 할 점들이 눈에 보였다. 쓸 거리들이 넘쳐났고 정 없다 싶으면 그날 하루에서 기억나는 걸 썼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며 내가 보낸 하루를 나의 시선으로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가벼워졌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어라?' 싶었으니까. 그동안 위축되고 있다 느꼈던 내가 갑자기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를 돌아보는 과정은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느꼈다. 


갑자기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 와중에도 일기를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노트 한 장을 다 채웠다. 그리고 잠깐 동안 사색에 잠겼다. 학년대표라는 리더의 입장에서 나는 어떤 리더였을까를 돌아봤고 그 이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매일 꾸준히 쓴 내가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일기를 쓰고 있다. 그러다 어제 문득 옛날에 내가 쓴 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머물렀다. 내가 코치님께 조언을 구해 처음 쓴 일기, 그리고 3달 동안 꾸준히 채워나간 그 노트를 한 번 보고 싶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정말 발전했다는 것을 느낀다. 일기를 쓰는 그 순간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회고해 보니 내가 발전했고 나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나,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많은 게 바뀌었다. 말 그대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조금의 징징거림으로 시작한 일기가 이제는 내가 고쳐야 할 점을 비롯해 내가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스스로 바꿨다. 힘든 걸 적어보고 고민해 보라고 말씀하신 코치님의 조언, 그리고 매일매일 쓰겠다는 나의 근성이 일기를 쓸 수 있게 해 줬다. 


일기는 나를 돌아보며 나를 스스로 성장시킬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된다. 나는 한 때 사람들이 완벽한 나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일기를 쓰면서 느꼈다. 완벽한 모습을 애써 보여주려는 것보다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다루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기가 주는 성장 요소 중엔 글쓰기가 느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직접 글로 씀으로써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데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나처럼 일기를 쓰면 좋겠다는 말이 아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던 것을 꾸준히 해보며 자신의 성장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마무리 전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아직 학생인 만큼 계속 일기를 쓸 생각이다. 다시 2년이 지난 후엔 이 글을 보며 내가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를 느껴보겠다. 조금씩 매일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이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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