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 오케스트라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한 학기 동안 악기별로 연습한 곡을 발표하고 마지막에는 합주를 했다. 색소폰과 호른, 트럼펫과 튜바와 트롬본, 플루트와 클라리넷, 타악기와 난타까지. 아이들은 봄에서 여름까지 자신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위해서 노력했다. 마을 어른들도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배운 난타를 공연했다. 어린 학생들, 젊은 음악강사들, 노년의 어른들이 함께 어우러진 음악회는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고 늙어가는 인생의 어떤 모습들이 담겨 있는 듯했다.
마지막 합주를 앞두고 음악 선생님이 나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셨다. 나는 준비해 둔 인사말보다는 다른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음악회 때 내가 느낀 것을 실어 나를 만한 이야기와 언어는 다른 것이어야 했다.
2.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키웠던 무꽃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가 거짓말처럼 집으로 온 날, 엄마가 가져온 예쁜 옷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두고 엄마 손을 잡고 가서 무꽃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그때 엄마가 어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했던 "아가야, 참 아름다운 일을 했구나"라는 말도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름다움의 힘에 대해 말했다. 아름다움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들에게도, 오늘 이 음악을 들었던 우리 모두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고 태어나게 한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또 존경한다고 말했다. '너희들이 참 아름다운 일을 했구나.'
3.
서투르고 어설프고 때론 너무 모자라고 때론 너무 넘치기도 해서 하고 나면 늘 머리를 쥐어뜯고 이불속으로 숨기도 하지만 나는 시인의 말을 배우고 쓰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싶다. 시인은 자신이 보았던 어떤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정확한 말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의 진실에 닿지 못해서 시인은 언제나 실패한다. 망했다고 생각하면서 시인은 또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럴 때, 시인의 말은 언제나 다시 시작하고 영원히 끝나지 않은 말이 된다.
4.
소설가 이청준은 「떠도는 말들」에서 “그들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하여 말들의 주소를 바꿔 놓음으로써 말들을 혹사했고 말들을 배반했고 결국에는 그 말들이 기진맥진 지쳐나게 했다.”라고 썼다. 말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도 그와 함께 있는 공동체도 불행하게 만든다. 그들은 침묵할 줄 모른다. 의미 없는 말, 마음과 영혼에도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그러면서 마치 그 말처럼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속이고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타인을 비난하고 모욕한다.
5.
작은 음악회가 끝나고 1학년 아이가 말했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가 아름다워지길 바라시는 것 같다고. 아이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악기를 같이 들어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긴 복도를 걸어갔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와 내 곁에서 함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