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봄비

by 김철원

1.

집에 올라온 날, 술집에서 옛 학생들을 만났다. 등을 지고 앉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목소리를 듣고 나는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아파트 놀이터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슬픈 소식을 전해주던 목소리. 그때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 새들의 소리. 수업 시간에 그들이 썼던 글과 했던 말을 여전히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고 했다. 일행이 있어서 나는 짧게 안부를 묻고 술집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 그들에게 문자를 했다. 글로라도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싶었다.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2.

가르쳤던 모든 날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다.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 일을 매일매일 하고 있다. 바보처럼, 뻔히 짐작되는 결과 앞에서 나는 과거에 했던 일을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


3.

글쓰기 수업을 듣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아이가 방학 때 썼던 글을 내게 보여 주었다. 나는 답장을 써서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으로 아이는 꿈이 생겼다. 나는 아이가 그 꿈을 향해 가는 길에 작더라도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패할지도 모르고, 아이는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이는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가 어디든 함께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같이 가보고 싶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련하지만 그래야 한다.


4.

금요일에 우연히 만난 아이는 고3 때 자기성장보고서라는 것을 썼다. 아이는 졸업하기 전에 내게 그 글을 보내주었다.


봄이 되면 이 수업이 생각나고 그립다. 나는 자유로워졌고 단단해졌다. 나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결코 나를 작게 만들지 않았고 나를 곧게 세워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더 살피고 안부를 묻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선생님은 좋은 글은 정확한 글이고, 아픈 글이라고 했다. 올해 초에 언니에 대한 글을 쓰다가 ‘너무 아픈 삶’이라는 문장을 ‘누군가 항상 해줘야 그나마 인간다워지는 삶’이라고 고쳐 쓰고 엉엉 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선생님이 한 말들을 내 속도대로 하나씩 지켜나가고 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아이의 글을 시창작과 글쓰기 수업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봄이 오면 옛 수업이 생각나고 그립다던 그 아이는 여전히 그럴까?

땅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지는 봄눈도, 금방 그치는 봄비도 내려야 할 것은 내려야 한다. 나도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 슬프고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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