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논평] 은폐된 애정

구병모 <아가미>

by 반파

<아가미>는 보호와 폭력, 사랑과 소유의 경계를 극단적으로 흐리는 관계 서사를 통해 '가족' 이라는 개념의 불안정성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다. 특히 강하와 곤의 관계는 혈연이나 제도 이전에, 상처와 결핍이 만들어낸 폐쇄적 유대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숨김' 이라는 윤리의 왜곡이다.

옛날에 엄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눈 부신 것, 빛나는 것, 귀한 것, 좋은 것은 숨겨놓고 혼자만 아는 거야. 남하고 나누는 게 아니란다. 그 말을 하고 일주일 뒤에 엄마는 분리수거를 미처 못한 폐지처럼 외할아버지네 집에 강하를 떠넘겼더랬다.

강하의 어머니가 남긴 "귀한 것은 숨겨야 한다" 라는 말은 이후 강하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공식이 된다. 귀한 것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며, 보호는 곧 은폐로 이어진다.

강하는 이 공식을 곤에게 그대로 적용한다. 곤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점차 '알려지지 않게 해야 한다' 는 의무감으로 변질되고, 그 과정에서 강하의 감정은 연민이나 책임을 넘어 소유와 공포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작가는 이 감정의 변화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강하가 곤의 존재를 감장하지 못하고 세상에 빼앗길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장면으로 제시된다.


중요한 것은 이 폭력이 증오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은 반복해서 강하의 감정을 '혼돈' 의 상태로 위치시킨다. 이는 강하가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으며, 가족이라는 감정을 언어로 정립하지 못한 인물임을 드러낸다. 그 결과 사랑은 보호가 아니라 통제로, 애정은 거친 말과 행동으로만 표현된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이 문장은 이 모든 왜곡을 통과해 도달한 강하의 유일한 진심으로 기능한다. 이 문장은 관계를 회복시키지도 않고, 면죄부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강하의 폭력과 결핍을 하나의 윤리적 진실로 수렴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 진심을 반복하거나 확장하지 않고, 단 한 번만 제시함으로써 감정의 과잉을 차단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 곤과 강하의 관계는 혈연이나 법적 지위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세계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통해 정의된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어요. 강하가 예전에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싫어했든 간에 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 걸요. (중략) 강하와 할아버지만이, 그리고 막판에 이녕씨만이 둘러싼 세상의 전부였던 당신에게 이것은 선뜻 이해가 가는 말이 아닐 수도 있겠어요.

해류가 짐작한 것과는 달리, 곤은 강하의 행동이 단순한 증오가 아니었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이는 말보다는 사물, 떠날 때 조끼 안주머니에 남겨진 감각을 통해 전달된다. 이러한 서사는 독자에게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그 인물의 처지로 전락하여 현실을 이입하고 견디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두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가족' 이었지만, 그 가족성은 안정이나 안식이 아닌 불안이나 상실을 전제로 한다. 작가는 이 관계를 해류 라는 인물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며 직접적인 감정 교환 대신 관찰과 간접 화법을 선택한다. 특히 강하의 죽음 이후, 곤이 강하를 찾아 헤매는 앞으로의 삶을 아이의 시선으로만 처리한 선택은, 이 관계가 끝내 해석이나 극복의 서사로 수렴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아가미>는 사랑이 반드시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보호가 언제든 폭력으로 변질 될 수 있음을 조용히 그러나 잔인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이 남기는 슬픔은 인물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끝내 말해지지 못한 관계의 언어가 독자에게까지 전이되기 때문에 강렬하다.


해류와 강하는 서로의 결핍과 고통을 알아보는 관계라는 설정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 해류는 강하와 곤, 두 인물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했던 인물이기에 강하의 결핍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폈던 사람이다. 또한 두 인물은 각자의 삶에서 구조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타인의 고통을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다만 이 관계가 육체적 관계로 급격히 전화되는 지점에서는 서사의 밀도가 충분히 축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강하는 사랑과 보호, 책임과 파괴를 끝내 분리하지 못하고 곤을 떠나보냈던 인물, 의연중에 그리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인물이 타인과 신체적 친밀성을 나누는 선택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은 강하의 내적 결단이나 심리적 변화가 충분히 준비되기 보다는, 서사의 전환점 역할을 빠르게 수행하기 위해 배치된 사건처럼 읽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급작스러운 죽음은 이 관계가 인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독자가 체감하기도 전에 관계 자체를 봉합해버린다. 이로 인해 비극은 강렬하지만, 감정의 여백이 충분히 발효되기 보다는 단절의 효과가 여운을 남기는 결말로 남는다. 이 작품은 감정의 밀도와 이미지의 아름다움이 매우 뛰어난 만큼, 주요 전환점에서 서사적 완급 조절이 조금만 더 확보되었다면 결말의 여운이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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