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뫼르소는 대중과 달리 ‘의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요컨대 사람들은 신, 도덕, 사랑, 고통, 죽음, 희망, 구원 등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에게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어 ‘비인간적’ 이라고 판단하여 죄인으로 몰아간다. 그렇기에 뮈르소는 사회를 부조리 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 란 자연, 존재 그 자체, 필연성, 무작위성, 무의미성을 의미한다.
즉, 뫼르소가 생각하는 세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세계인데, 사회는 의미를 부여해 살아가며, 자신에게도 그 의미에 끼워 맞추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이 피고인이 기소된 것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라는 겁니까, 사람을 죽여서라는 겁니까?” 라는 변호인의 호소가 나올 정도로 재판의 본질이 흐려진다.
- 뫼르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정하지만, 자신과 동일하게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죽음을 선고받을 것이며 그 시기가 무엇이 중요하냐는 입장을 취한다. 죽음의 필연성 앞에서는 모든 삶의 우열이나 의미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뮈르소는 항소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살 가능성을 늘리는 희망의 장치인데, 그는 살기 위해 의미를 조작하거나 기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이다. 즉 뮈르소는 이성적으로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인지하며, 감정적으로는 두려워하지만, 태도적으로는 그럼에도 회피하지 않고 수용한다.
- 뫼르소는 침묵하는 무의미한 세계에 안정감을 느끼며,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마저도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밤의 감각에 집중한다. 그렇게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만을 직시하길 바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와 함성으로 맞아주기를 바라는데, 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의미가 나와 다르더라도, 왜곡 없이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고,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뫼르소가 말하는 부조리한 삶이란 <의미를 요구하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균열 속에서,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의미가 다시 개인에게 폭력>으로 작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부조리한 삶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1. 인간의 기대와 세계의 침묵이 충돌하는 부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 이유, 설명, 목적을 원하지만, 세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아무 목적도 없으며, 아무 이유도 없는 상태로 존재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의미를 갈망하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를 부조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뫼르소는 이 침묵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장례식이나 살인의 이유를 태양 때문이라고 말한다.
2. 사회가 만든 의미의 폭력에 대한 부조리
세계가 침묵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그 공백을 견딜 수 없어서 도덕, 종교, 규범, 의미서사, 정상성 같은 기준을 만든다. 요컨대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는 울어야하고,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등의 기준 말이다. 그리고 그 의미 체계를 절대적인 것처럼 개인에게 강요한다. 뫼르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는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 뫼르소는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이방인이지만, 가식적인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는 관찰자이다. 즉 이방인을 정의하자면 <사회적 규범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세계에서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에서 벗어나 존재방식이 사회와는 그저 다른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