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생

일상의 공백

by 지개인

남편이 출근하고, 첫째가 등교하고 끝으로 둘째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전 9시 반에서 열시쯤.

‘띠띠띠띠띠띠, 열렸습니다.’ 손잡이를 잡아 내리자 ‘딸깍’과 ‘철컥’ 중간쯤의 음이 울린다. 현관문을 그 무게만큼의 힘으로 당긴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내 소리가 들린다. ‘닫혔습니다.’ 문을 향해 다시 돌아서서 나서기 좋게 신발을 벗어놓는다. 정리하는 수고를 덜고 덧붙는 몇 초의 시간을 아쉬워 뒤늦게 뺀 왼발로 툭툭 쳐 신발정리한다. 그대로 뒷걸음질쳐 거실로 올라서서 중문을 닫는다.

단절. 주말동안 남편과 아이들의 동선에 따라, 그 속에 엉켜있던 번잡스러움과 수북히 쌓여있던 성가심의 주말이 끝난 것이다. 여유로움의 냄새가 코를 타고 흘러 폐 속으로 직행하고, 온 몸에 나른함이 퍼진다. “흐음~~휴우~” 큰 숨 한번 들이키고 내뱉는다.

제 몸집 만큼의 바닥만 차지하고 있는 장난감과 인형, 책들이 거실 여기저기에 주말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눈에 거슬릴 만 한 물건들만 제자리로 치워둔다.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이 여유에 곁들일 커피 한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온다. 조그만 상을 펴고 잔을 올려놓는다. 자리 잡고 앉으면 고요하고 잔잔하게 눈에 들어온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에서 이른 오후까지 식구들이 난 자리.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대로 넘어온 나만의 보이드.

나른해지고 지루해지다 밀도 있게 빽빽해지다가 요란해지기를 반복하는 텅 빈 보이드의 공간.

그 안으로 들어선다.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누군가를 만나볼까, 각각에 얼만큼의 시간을 배분할까.’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떠올리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도드라진 것을 찾지 못해 이것저것 가능성의 무게만 저울질하다 시간을 보낸다. 기웃거리다 헛돌기만 한 자아들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흐릿해지고 멍해진 틈으로 불쑥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날엔 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미적지근한 미련과 후회를 버려놓는다. 반면 할 일이 있는 날은 안심이 되고, 그동안의 상념은 잊혀진다.

단순하다가도 이내 복잡해지고 어둑해지다 일순 밝아지는 찰나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온도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이 되었다면 달랐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좋을까.’ 가족을 우선순위에 둔 채 재고 따지다 보니 마땅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선택이 안이한 게으름으로 여겨질까 괜스레 걱정이다.

생에 끼어든 결혼과 육아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집 바깥에 책상을 가진 삶들에 슬쩍 곁눈질을 한다. 내 자리는 어디일까 하는 자문의 꼬리는 지나간 시간만큼 늘어지기만 했다.

식구들이 집을 나서서 돌아오기까지의 공(空)생활은 시간적 여유로움과 그에 반하는 혼란스러움의 소용돌이 이다. 사(私)생활로 여기고 만끽하기엔 면목이 없고, 무언가를 시작하자니 시간이 부족해 꼭 둘 중 하나에 걸려 넘어진다.

육아와 집안일이 언제까지 구실이 되어줄까. 업이 주부인 한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은 풀지 못하는 짐과 같다. 금세 훌쩍 커버릴 아이들과 그때에 들이닥칠 공허를 셈하며 여물게 살아야 할까. 답하지 못하는 물음은 오늘도 목구멍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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