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The Giraffe and the Pelly and Me

by 지개인

기린과 펠리컨과 원숭이의 조화가 돋보인 작품이였다.

이들 셋은 각자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하나의 일을 이루어낸다. 기린은 긴 목을 늘려 높은 창문에 닿을 수 있고, 펠린컨은 커다란 부리로 물을 가득 담아오고, 원숭이는 기린의 머리에 올라가 창문을 닦는다. 셋이 한 팀이 되어 서로의 강점을 모아 시너지를 발휘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장점을 부러워하지 않고,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은 모습이 없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간 통일된 과정과, 완성된 결과물에서 ‘창의와 융합’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건 너무 거창한 것일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재주일지라도 본래의 가치는 없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오히려 서로의 장점을 더해 ‘높은 곳의 창문닦기’를 하나의 업으로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 걸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야기의 초반에 느닷없이 나타난 기린과 펠리컨, 원숭이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 스며든 ‘이주노동자 혹은 난민’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배타적인 감정과 심지어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역사를 배우고 공유하며 살았던 우리가 이런 느낌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생김과 문화는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이들 또한 삶을 영위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일 것이다. 한 예로, 펠리컨은 보석을 훔쳐간 도둑을 잡는다. 자신의 커다란 부리 안에 도둑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그의 정의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른 것을 보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근원의 마음은, 본래 이곳에 살아온 우리만이 가진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았다. ‘배타’와 ‘이타’는 어쩌면 우리 각자가 놓인 상황에 따른 ‘결정’이 아닐까 하고.

로알드 달의 때묻지 않는 상상력에 감탄하며,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기괴하지 않은 스토리에 안심하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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