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크리스마스에 날아온 동화

시드니 쿠지비치를 가다

by sally

12월, 호주의 정열적인 여름 태양이 온 동네 꽃향기를 몰고와 구애를 시작하면 하늘 저편 어디선가 붉은 털모자에, 빨간 반팔티를 입은 산타는 썰매에 동화를 가득 싣고 시드니로 향한다.





지난 주말 농원에서 사 온 붉은 장미가 뜨거운 여름빛에 시들어간다. 어제만 해도 그녀가 책상 위에서 애처롭게 바라보더니 하룻밤 사이 고개를 숙였다. 책을 뒤적이며 숙제를 하다 꽃잎을 하나씩 따서 책갈피 사이 끼어넣었다. 집에 데리고 왔을 땐 선명하게 붉은 꽃봉오리를 내밀더니 어느새 꽃잎은 생을 마무리하고 책갈피 속 그리운 추억으로 묻히고 말았다.


달력을 보니 12월 17일이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처럼 호주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현지인들은 휴가철로 들떠있지만 이방인의 삶은 상대적으로 쓸쓸하고 마음에 바람이 찬다. 창문 너머로 보라색꽃이 지고 난 자리에 초록잎으로 무성한 자카란다 나무를 바라보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방인의 삶에 허기가 돌았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여름 햇살이 거실에 가득 찼다. 주말마다 나가자고 달달 볶는 곰둘을 피해 오전 내내 일부러 책을 미리 펼쳐든 것에 그녀가 삐졌는지 아침 식사 후 보이지 않는다.(곰둘은 곰인형을 좋아하는 그녀의 별명이다.)


혹시나 하고 닫힌 곰둘의 방을 빠끔히 열어보니 그녀가 컴퓨터에 풍덩 빠질 자세로 앉아있다. 나는 문에 기대어 서서 작은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곰둘, 쿠지비치 가서 피시앤칩스 먹고 싶은데."


그녀가 의심스러운 듯 날 바라본다.

얼굴이 동그랗고 볼살이 통통한 곰둘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안돼. 이번 주 시험이잖아."


그녀는 IT 일을 하다 보니 정기적으로 엔지니어 관련 시험을 본다. 일 년에 몇 번 외출하자는 나의 특별한 제안에 곰둘의 엉덩이는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쿠지비치는 시드니 동부 해안에 위치한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이기도 하지만 그리움이 많이 묻어난 곳이기도 하다. 해변 입구에 길게 줄지어 있는 상가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푸릇한 잔디밭과 높은 절벽, 바다에 닿을 듯한 뭉게구름, 새파란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피시앤칩스 맛집도 그곳에 있다.)


나는 숙제할 내용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느라 거실을 서성거렸다. 갑자기 곰둘이 방에서 노래를 부르듯 소리를 질렀다.


"가아자아~"


곰둘이 신난 목소리다. 그녀는 가끔 동화책에서 온 장난꾸러기 같다.


"갈 수 있어? 시험 공부 해야 된다며."

"연필 굴려야지."


곰둘다운 말이다. 그녀는 기계적, 단순 심플주의다.


곰둘의 콧노래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모처럼 차를 놔두고 기차를 타고 시티에서 버스로 갈아탔다. 맨 뒷좌석에 앉아 차창밖을 바라보니 한 여름날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거리 곳곳에 펼쳐졌다. 이방인의 12월, 뜨거운 여름날 크리스마스의 거리는 적응이 되었어도 속 깊은 고국에 대한, 함박눈이 오는 설렘의 크리스마스는 남몰래 간직해 온 첫사랑처럼 항상 그리움되어 남아있었다.


해변도로가 가까워지면서 버스는 좁고 구불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곰둘은 몸을 유난히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난기를 발동시킨다. 나는 질세라 옆으로 비켜 앉으면 곰둘은 중심을 잃고 넘어질 듯 곡예를 부린다. 나는 그런 귀여운 곰둘을 가끔 좋아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12월 여름 해변가는 비교적 한가했다. 호주의 여름 풍경은 산만하지도 떠들썩하지도 않은 고요한 풍경을 자아낸다. 우린 한적한 인도를 따라 아기자기한 상가들을 구경했다. 중간쯤 걸었을 때 곰둘은 그녀가 좋아하는 인형가게를 발견하고 한참을 그곳에서 서있었다.


해변가에 다다를 때쯤 피시앤칩스 맛집에 들러 주문을 하고 나서야 곰둘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그녀는 저만치 인형 가게 앞에서 미련의 여주인공처럼 고독하게 서 있었다. 나는 피시앤칩스를 들고 그녀에게로 걸어간다.


"저 곰인형 봐봐 엄청 크지?"

"갖고 싶어?"

"그렇긴 한데 너무 커서 가져갈 수가 없잖아."


집에 있는 그녀의 곰인형들은 품에 안을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작은 키의, 사람만 한 곰인형을 그녀는 상당히 갖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곰둘은 시선의 아쉬움을 남기고 체념한 듯 앞서 걸었다. 하얀 티에 분홍체크무늬 옷을 입은 그녀의 뒷모습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여인네 같다.


해변에 도착하자 우린 모래사장에 서서 흰 포말을 품고 부드럽게 빗질하듯 연이어 오는 파도를 보며 이국에서의 낯선 환경들을, 고국에 대한 그리운 것들로 중첩시키며 각 자의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걸어 다시 절벽 위에 올라 깊은 수심의 새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낯선 감정들을 조금씩 잠재웠다.


우린 그랬다. 이방인은 낯선 땅 맛집의 피시앤칩스를 먹으면서도 된장찌개에 12월의 김장김치를 생각하며 먹는다. 땅은 밟았으나 마음은 고국에 대한 것들이 꿈결처럼 그리운 것들로 가득했다. 너무나 그리웠다. 낯선 땅, 낯선 환경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텅 빈 마음의 허무한 것들을 우린 보았을 것이다.



그녀와 난 작은 정원 같은 곳을 지나 바다가 바라보이는 잔디밭에 누워 하늘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자연은 고요할 만큼 아늑했고 아름다웠다. 몽실몽실한 낮은 구름은 시선 위에 바로 떠 있고, 생은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되어 유유히 하늘 위 구름처럼 붉은 꽃잎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외로움으로 흠뻑 곁들인 조미료는 더할 나위 없이 우리의 존재를 이방인의 땅에서 젊음과 함께 아름답게 또는 고독하게 흘러가게했다.


쿠지비치의 풍경 소리가 저음의 첼로 선율처럼 들려오고 있을 때 정적을 깨고 곰둘의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듯 누운 채로 여름 하늘 속 풍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곰둘은 서울에 계신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서야 얼굴이 하얘지더니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성급히 말하자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심장마비로...


우리는 서둘러 쿠지비치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고, 곰둘은 그다음 날 비행기로 출국했다.

스물여덟 살, 혼자 유학길에 온 곰둘은 호주인들 사회로 들어가기까지 외로웠던 모든 시간들을 혼자 감내하면서도 항상 씩씩했었다. 아마도 그런 시간이 오기까지 그녀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를 생각했다. 그녀의 외적인 단순, 심플주의는 그래야만 이방인의 삶을 낯선 땅에서 모두 감당했을 것이다.


곰둘이 떠난 빈자리는 며칠이었어도 내겐 컸던 것 같았다. 그만큼 나도 배드민턴 단짝 친구인 그녀를 이국 땅에서 의지를 많이 했으리라고. 그래서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찾아 곰둘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아버지 장례를 마친 후 비행기 티켓을 어렵게 구한 후 12월 27일에 겨우 호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공항으로 픽업을 나갔고 입국장을 빠져나온 곰둘은 그새 많이 야위어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곰둘은 말이 없었다. 간혹 울먹거리며 차창밖으로 짙어가는 여름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낮게 깔린 새하얀 뭉게구름이 새파란 하늘과 경계가 짙어서인지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대비적으로 더 슬퍼보였다.


자연이 그토록 맑은 빛임에 오히려 사람의 슬픔이 왜 그리 구슬퍼 보였는지, 나는 인간의 연약한 어떤 것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해 깊은 슬픔이 내 마음 아래로 더 침잠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청아하게 그녈 향해 내리쬔 여름 태양빛이 파란 하늘에 더없이 맑고 깨끗함이, 우리 생의 아무런 간도 양념도 넣지 않은, 흙처럼 자연 그대로 맑은 것들의 슬픔을 닮은 것도 같았다.


내가 주차를 하는 사이에 곰둘이 먼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뒤따라간 나는 그녀가 현관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울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곰둘이 쿠지비치에서 갖고 싶었던 작은 키의 사람만 한 곰인형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붉은 방울들과 조명등이 갖가지 색으로 여름 햇살이 가득 들어와 있는 거실을 눈부시게 밝히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다시 돌아와 주어 고맙고, 너의 슬픔을 함께 나누길 바랄게. 곰둘, 고생했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낯설고 어설픈 이방인 땅에서의 겪은 슬픔을 서로의 품에 한껏 안아주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종종 쿠지비치를 찾았고 곰둘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그녀는 그곳을 갈 때마다 붉은 모자를 쓰고 빨간 반팔티를 입은 산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것들의 동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했다. 나는 아직도 쿠지비치에서 그립고 아름다운 생을 이루었던 우리들의 시간들을 앨범 속에서 자주 들여다본다.


나는 소망할 것이다.

12월, 한 여름날 크리스마스가 될 때면 그녀의 아버지는 산타가 되어 곰둘에게 줄, 아주 커다란 곰인형을 썰매에 싣고 그녀가 있는 시드니 paramatta로 향해 올 것이라고.


(그녀의 paramatta 산책길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