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로록,
에나멜 검은 구두에 빗방울이 흘러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낮게 깔린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구두소리가 다시 시멘트 바닥을 울리기 시작했을 때 콧잔등에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릿한 냄새가 도심지 검은색 공기와 함께 폐포를 누른다. 시선을 도심지 뒷골목으로 돌리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말끔한 식당 처마 밑에서 회색가방을 뒤적였다. 작고 가벼운 양산이 어딨지. 그때 뒤편에서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점심을 거른 탓인지 허리춤이 느슨해졌다. 새파란 바다색 바지. 상아색 시폰 블라우스. 주름잡아 다시 고쳐 입는다. 무거워. 진주 귀걸이를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몇 시지. 가느다란 손목에 걸린 검은색 원형 유리를 터치했다. 초록색 숫자 4:35. 10시에 시작한 회의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마른침을 삼키며 금색 갈고리를 잡고 양산을 펼쳤다.
골목길을 빠져나왔을 때 비가 거칠게 쏟아졌다. 양산을 뒤로 젖혀 허공을 응시했다. 미세한 물방울들이 연이어 수직으로 떨어진다. 우주에 있던 물들이 땅으로 쏟아질 때 나는 창세전 물방울이 되어 공허한 땅으로 낙하한다. 아무런 감각 없는 물방울. 존재의 고통도 없을 물방울.
어지러워. 또 갈 곳을 잃었잖아. 검은색 구두가 혼자 걷기 시작해. 아 존재는 미네랄이 필요해. 듬뿍.
수평으로 걷지만 물방울처럼 땅으로 낙하하며 걷는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 푸드덕.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다를 바 없잖아. 후드득, 푸드덕, 발음이 원시적이야. 나는 다시 입모양을 짓고 소리를 내어봐.
후드득, 푸드덕, 아니 후드덕, 푸드득.
소화기능도 원시적인 건 물론이야. 검은색 원형을 터치할 때마다 초록색 숫자는 점점 커져. 배가 고파져. 내게 시침이 있다면 한 시로 되돌려 점심을 먹을 거야.
작은 양산에 우주를 의지한 채 도심지 거리를 걷는다. 인도 곳곳에 패인 작은 물웅덩이에 빗물이 동그라미를 수시로 그려낸다. 가만히 서서 바라본다. 파문이잖아. 우주 물창고에서 벌어진 스캔들이 빗방울 되어 떨어진 모습이야. 사랑을 잃어버린 신이 먹구름 뒤에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
슬픔. 그래 슬픔이 낙하하는 소리. 땅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아. 신의 슬픔을. 나는 지금 배가 고플 뿐이고 여린 허리에 바지가 흐느적거려 신경이 쓰일 뿐이야. 최근에 엉킨 신경은 사막에 말라비틀어진 식물줄기였지. 그건 또 고장 난 시계소리처럼 알람이 아무 때나 울렸더랬어. 한 글자도 볼 수 없었어. 인간이 창조한 문자를 사용할 수 없었어. 내게 금기시된 것처럼. 난 봄바람이 불어올 때 머리카락을 날리며 가만 서서 자연, 그리고 공간만 바라보았어.
하늘. 구름. 나무. 강물. 빛. 초원. 산등성이. 풀잎. 공원. 산책로. 기찻길. 도로. 달리는 자동차. 인도. 움직이는 사람들.
빗방울이 떨어지듯/ 하지만 거꾸로/
언어가 존재로부터/ 낙하하고 있을 때/ 신경줄은/ 우주 공간 어디쯤/ 머리카락 엉키듯/ 거미줄처럼/ 걸려 있었지. 그러다/ 원시적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났어. 말라비틀어진/ 신경줄기를/ 오아시스에 담갔지.
나는 차마, 낙하하고 있었던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어. 낙하 시점에선 공기 속 풍선처럼 부웅 떠오르거나 아니며 새처럼 날고 있는 것처럼, 원시적인 나는 몰랐어.
에나멜 구두에 굵은 빗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나는 우주 정거장 어디쯤에 있는, 노란 조명등 아래, 조용한 식당.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릴 정도의 소음만.
홀로 앉아 은색 나이프로 설익은 고기를 쓸어본다. 한 점 고기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넣는다.
통창으로 된/ 두툼한 유리문에/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할 때/ 신경줄기는/ 아래서 위로 떨어진다/ 존재에서 구름으로/ 시선을/ 그곳에 두었을 때/ 나는/ 비오는 수채화 그림을/ 거꾸로 들고 있다/ 창밖에서.
그것이 낙하. (落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