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을 버리려는 결심을 다지게 해준 면접
현재 의료기사로 근무한지 2년차, 하루하루 일하다보니 내가 언제 졸업했는지도 가물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산전수전은 다 겪은 기분에 체감상 +20년은 더 산 것 같고 안광이 탁한 나무처럼 바래버렸다.
4년제고 전문대고 아마 임상 중 흔한 의원에서 일하는 의료기사들은 다 나처럼 하루살이 같은 불안감을 느꼈을까.
내가 적성에 안맞나 고민도 해보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치료보다는 서비스에 가까운 업무를 할 때의 현타는 책 한권을 써도 모자를 정도이지만 그것 외로 치료에 가까운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부가적인 서비스(친절한 응대, 설명희생 등)를 해야했어도 재밌었으니 어쩌면 [치료] 자체는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자본사회에서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치료사가 해야하는 일은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닌, 병원의 수입, 영업 등등 현실적인 부분으로 인해 남들보다 더 대우받을 수 있고, 더 가치있고 나를 발전시키는 치료 보다 병원에서의 치료사는 '서비스업'에 가까워 졌다.
또한 병원 특성상 토요일도 근무해야하고 특히 내가 근무한 병원은 연차가 자유롭지 못한 점이 나를 많이 갉아먹은 것 같다. 남들 다 쉬는 토요일 일요일 붙혀서 쉬는 것이 특권처럼 보이는 지경이었으니...
누구는 평일 쉬니 좋지 않냐, 은행도 가고 병원도 가고 편하겠다는데 징검다리로 하루걸러 하루쉬면 몸은 쉬어도 머리는 쉰지 모른다.
일반 직장인도 아마 수요일 쉬고 목금토(토요일은 오전) 일하고 일요일 하루 쉬고 다시 월화 일하고 이렇게 근무일정을 정해놓으면 힘들 걸.(심지어 휴무요일도 수요일인지 화요일인지 제각각)
이렇듯 이틀연달아 쉬는게 연례행사인 병원 근무일정은, 일과와 내 삶의 분리도 잘 안되고 쨋든 가타부타 말만 길어진다.
덧붙여 말하면 징검다리로 쉬고 별도의 법정연차는 없다.
심지어 완전 주5일도 아니라 주6일로 일해야하는 주면 이유없이 죽고 싶어지기도 했다. 주54 시간 근무하면 진짜 일하다 청춘지겠네 소리가 입으로 나오는게 아니라 중추신경이 뇌에서 스스로 신호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이 일을 그만둘지, 아니면 그래도 조금 더 해볼지 고민했다.
사실상 2년차지만 업계 탑말고 전공 분야별 분위기는 다 느껴봤기에 고민이 많았다.
요양병원은 이래서 싫었고 종합병원은 이래서 합격하고도 안간다 선언했고 등등, 결과적으로 이젠 몸을 좀 안쓰고 일하고 싶었다.
아니면 최소한 몸을 소마냥 써서 일하더라도 휴무라도 제대로 보장을 해줬으면.. 싶어서
월~금 근무 + 법정연차도 따로 제공해주는 일반 회사와 비슷한 병원의 면접을 가게 되었다.
미리 문자로 조율한 부분이 있음에도 면접관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굴기에 속으로 '문자를 누구랑 한 건지도 제대로 모르나 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두번 환승에 근 한시간을 걸려 간 거리였는데 이걸 매일 출퇴근으로 하는 걸 둘째치고 급여가 너무 낮았다.
식대 포함 실수령 265의 선에서 맴도는 급여는, 어쩌면 높지만 업계특성상 상한선이 정해져있어 근속이 5년이든 10년이든 높아져봤자 300이하 같았다.(솔직히 말해서 점심 식대 포함이 충격이었다. 정말 최소한만 주려는 노력이 보였다.)
업무환경 한번 보고 가라는 말에 훑어보다 우연히 환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걸 응대하는 **치료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곳이라도 다를 것없이 **치료사에겐 일상마냥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근무할 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환자들의 무례한 행동들을, 제 3자가 되어 이 곳에서 근무를 할지말지 선택하는 입장에서 보니 '정~말 하기 싫은 일이네'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급여가 적어서, 근무지가 멀어서 등등 걸고 넘어질 건 많지만 아마 실수령 300 이 넘더라도 난 정~말 하기 싫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서비스직 특성상 무례한 환자들의 언행에는 진저머리가 났다. 이제는 사회취약계층의 아줌마~할머니 중에 억척스러운 사람이 많다는 논문이 한편쯤 나와줘도 사회현상상 반박할 논지가 없을 듯 하다.
그런 면접을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이 일에는 미련을 안가지기로 했다.
내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몸굴려가며 비위는 비위맞추며 세금 다 떼고 얼마를 받는다고 그렇게 집착을 했는지.
(사회초년생 치고 많이 받는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많이 받고 좋아보이면 본인 자식시켰으면 한다. 정작 내 상사도 자기 자식들은 본인과 같은 길은 밟진 않았으면하는지 공부하라고 일방적이고 본보기없는 잔소리를 한다고 한다.)
다른 일을 하기가 두려웠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나마 업계 중엔 괜찮았던 지금같은 근무조건을 더 구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는데 사실상 그것도 가스라이팅의 일종 이다.
다른 일을 안해보니 이게 정말 좋은건지 힘든건지 단순히 찍히는 월급에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잘 못하는 치료사가 많은 것 같다. 막상 남들에게 본인 연봉을 제시하며 의원서의 업무를 말해주면 공장, 생산직, 현장업 등 산재나 과로사의 위험이 있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좋다고 할 수 있겠으나 사무직에게는 조금 달갑지 않은 제안일 수 있다. 3000언더의 사무직종 또한 필자처럼 몸쓰는 일 안하고 더 적게 벌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의 직무가 고민된다면 '언제까지고 이 일을 할 수는 없겠다' 는 생각이 든 순간, 빠른 시일 내로 결론을 내려 마음이 정해진다면 도망쳐야한다.
정확히 1년 7개월 전 도망을 쳤을 수도 있지만 나는 발버둥을 쳐본다고 쳐보았으니 마지막까지 노력을 해본 것들이 있으니 더 아쉽지 않을 수 있을 거같다.
면접을 나오고 나선 곧바로 서점으로 직행했다. 서점에서 한시간이 넘도록 책만 구경한 것 같다.
다른 걸 하고 싶지만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 지 잘 모르는 나의 내면을 알아보기 위해 책을 보러갔다.
내가 고민하는 상황에 적합한 깨달음을 줄만한 책.
뜬구름 잡듯이 쉬어가도 괜찮아 그런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하면 내 두려운 마음을 잠재울 수 있을지 찾아보았다.
제목을 보면 내가 찾던 주제같다가도 서론을 읽어보고 내용도 읽어보면 내가 궁금한 건 이게 아니다 싶던 것도 있고 '뜬구름 잡고 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표현만 다르지 결론을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주는 책도 있었다.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과 동시에 내 삶을 채울만한 것들을 어떤 것으로 정할지 다른 이의 경험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다. 총 5권을 책 중에서 정말 지금 당장 필요한 내용의 책 3권을 추려 구매했다.
처음엔 괜찮은 책이 별로 없네, 싶다가 이렇게 재밌게 사는 사람이 많구나 라는 생각에 서점을 나올 때 가방은 더 묵직해졌지만 인생고민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은 가뿐했다.
원래 밖에서 음식에 돈을 쓰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지만 오늘처럼 오랜만에 마음이 가뿐해진 날은 뭐라도 입에 넣어주고 싶었다. 외식도 하고. 책 한 챕터를 읽고 정리도 하였다.
현재 내가 종사하는 업종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많아보이던데, 솔직히 말해서 이 직업이 좋지 않은 이유를 100가지도 쇼츠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장점 또한 있기에 편하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 거 같다.
누군가는 나보다 성공하고 만족하고 행복한 치료사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적성의 문제인지 환경의 문제인지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인지 복합적인 상황에 나 말고 다른 현직자들도 '지는 태양' '불꽃이 꺼지고 있다' '이직하고 싶어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내가 약한게 아니라 다들 힘들긴 매 한가지 인가보다.
그래도 다들 나보다 몇년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일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