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집

by 민제

그림 같은 집이 생긴 첫날밤, 나는 함부로 불을 켤 수 없었다.

스무 살 새내기 시절 두 살 터울의 남편을 만나 씨씨(캠퍼스커플)가 되었고 6년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했다. 시아버님과 시어머니, 동갑내기 시누이가 함께 살던 집으로 나는 소위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하얀 앞치마 두르고 밥솥이 칙칙 돌아가는 주방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밥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명한 IMF시절을 겪으며 아이들을 낳아 엄마가 되고 어른들도 나이가 들어갔다.

부지런하고 인자하시던 시아버님께 뇌졸중이 온 게 막 큰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중증질환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 없던 때라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여러 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교모세포종이라는 종양까지 생겼다.

IMF로 남편이 다니던 회사도 법정관리 중이라 급여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때였다.

마지막 남은 생활비 4만 원을 들고 장을 보러 나섰다. 골목어귀 꽃을 팔던 트럭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꽃을 보고는 이름과 가격을 물었다.

삼만오천원이란댜. 낙심을 하고 장을 보러 가려다 다시 등을 돌려 트럭으로 가서 꽃을 사버렸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의아하지만 내 앞에 던져진 운명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늙고 병든 아버님처럼 오래된 집도 이곳저곳 허물어져가던 터였지만 마당 한편에 그 꽃, 클레마티스를 심었었다.

아이들과 자던 방에 비가 한두 방울 새기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여력도 없이 깡통 몇 개로 빗물을 받아냈는데 큰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ㅡ엄마 엄마 왜 우리 집은 가난해?

20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작은아이를 등에 업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건너편 아파트 불빛들을 보며 한참을 울었다. 열심히 성실히 살아온 내게 왜 내 것 하나가 없을까 하고.


어머니와 교대로 간병을 하던 터라 기저귀도 어쩔 수 없이 갈아야 했다. 처음 기저귀 갈던 날을 기억한다. 비위가 몹시 약한 나는, 그때만 해도 정신이 또렷하던 아버님 앞에서 구역질이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 밤새 고민하던 나는 생각했다.

ㅡ그래 입으로 들어간 게 나오는 것뿐이야

남편이 내처음을 함께 지켜보며 눈물을 보였다. 걱정과 달리 너무 능숙하게 잘 해냈지만 그 일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님을 보내고 우여곡절의 시간이 흘러 남편은 회사를 옮겼고 십 년이란 긴 세월의 빚을 얻어 집을 허물고 새로 지었다.

새집에 첫발을 들이고 남편에게 물었더랬다

ㅡ여보 이게 정말 우리 집이야?

ㅡ아직은 은행집이야

하하 깔깔

정말 오랜만에 웃으며 새집으로 입성을 하고 어두워진 집안에 불을 켤 수가 없었다.

작은 아이 등에 업고 바라보며 울던 아파트 불빛이 생각나서.

남편이 온 집안의 불이란 불은 다 켜고 그랬다.

ㅡ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