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매장을 내고 싶어

열망과 결정

by 정파이

나는 파이집을 시작하면 아침부터 밤까지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빵집들은 새벽에 문을 열었다가 밤늦게 닫았기 때문에 나 혼자 8살, 5살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 같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자꾸 생기니까 길 가다가 상가 공실만 보이면 기웃댔다. 우리 아파트 입구 외진 상가에 공실이 있어서 거기 붙은 번호로 전화를 해봤다.


상가 주인인듯한 할아버지가 월세 80 이란다. 보증금은 기억도 안 난다.

월세 80 이란 말씀에 "헉!" 소리를 입 밖으로 었던 거 같다.

할아버지가 깎아주겠단다.

나는 깎아줘도 안될 거 같아서 전화를 끊었다.

'대로 변도 아닌 저런 위치도 월세가 80이구나....'

그때부터 길을 걸을 때면 가게들만 눈에 들어왔다.

'와... 저 안경점은 저 위치에 월세가 감당이 가능한가? 안경이 많이 팔리시나?'

'와... 저 정관장은 손님 있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저 큰 매장이 유지가 되나? 건물주님이신가?'

매장을 가진 자영업자분들이 위대해 보였다.

그렇게 수그러드는 듯했던 사업장에 대한 내 욕망이 뜻밖의 계기로 진행되어 버렸다.


.........


내가 직접 호두파이를 배달하다 보니까 우리 지역을 잘 파악하게 됐다. 애들 학교랑 학원 다니기 좋은 동네가 어딘지도 알게 다. 우리 동네는 서울 쪽에 가까워서 오빠야가 출퇴근하기엔 좋았는데 애들 교육을 생각해서는 이사를 가고 싶었.

사실 우리 부부가 결혼한 시기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기 직전이었. 2006년 봄에 결혼했는데 부동산은 가을에 폭등했. 결혼 준비 중에 신혼집을 매수하려고 신랑이 추진했는데 시댁에서 신혼에 무슨 대출이냐, 전셋집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살림 늘리는 재미가 있는 거다 하며 말리셔서 포기했었다. 그렇게 전세로 시작했는데 그해 가을에 부동산 대폭등이 시작된 거다.

오빠야는 맘이 급해졌. 결국 요새 말로 영끌을 시전 해서 집을 샀는데 2008년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금리가 너무 올라 우리는 집을 팔고 다시 전세살이를 다.

그런데 이제 아이도 학교에 다니는데 우리도 집을 사자 싶었다. 그래서 내가 봐둔 동네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갔다. 집도 몇 군데 봤다. 하지만 여전히 대출을 너무 많이 받아야만 했다. 우리는 한번 대출에 데어봐서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집을 못 샀다.

그때 내 맘이 굳혀졌다.


파이집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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