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뜨거운 여름에는 여차하면 수온이 올라가 버리기 때문이다.차라리 추운 겨울에는 어항용 히터로 물 온도를 맞춰줄 수 있지만 여름에는 그마저도 곤란하다.
가재나 열대어 같이 수온에 민감한 녀석들을 키우는 집사들에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겨울에 데려왔던 김가재에게도 여름이 찾아왔다.
물생활이 처음이었던 우리 집 초보 어항 관리자들은 걱정이 많았다.
블루 크로우가 살기 좋은 적정온도는 24도 정도라고 했다. 대략 여유 있게 기준을 잡는다고 해도 22도에서 26도 정도는 맞춰줘야 될 것 같았다.
그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일본에 기록적인 폭염이 닥쳐서 섭씨 40도까지 기온이 올라갔고, 친환경 농법을 위해 논에 풀어놓았던 가재들이 빨갛게 익은 채로 떠올랐다는 기사였다.
이웃 국가의 살인적인 더위를 알리기 위한 기사였지만 가재를 키우는 우리에겐 끔찍한 뉴스였다. 당시 논의 수온은 43도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집안에 있는 어항의 수온이 그만큼 올라갈 린 없겠지만 잘 조절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가족은 매년 아이들 여름방학 때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휴가를 간다. 둘 다 부산 출신인데 경기도에 와서 살다 보니 부모님 댁에 방문드릴 일이 1년에 몇 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휴가엔 부산에 가게 됐다.
그런데 이제 관리해야 할 어항이 생겼으니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우선 일주일 동안 먹이를 어찌 줄 것이며 한 여름이라 기온이 엄청 올라갈 텐데 수온은 어떻게 맞춰줄 것인가.
남편은 시댁에 전화를 해서 이번엔 가재 어항 때문에 휴가 기간을 짧게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시부모님은 당연히 황당해하셨고 더 황당한 제안을 하셨다.
"가재를 봉다리에 싸갖고 오면 안 되나? 내가 여 물 받아 놓을게!"(부산 사투리)
"엄마! 얘가 그렇게 이동할 수 있는 애가 아니라니까~ 에헤이~ 마! 됐어요! 여기서 알아서 할게요."
꽁트같은 두 모자의 대화. 어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먹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됐다. 쿠팡에서 어항 자동 급여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 똑똑한 기계는 시간 맞춰 먹이를 자동으로 뿌려줬다. 8시간에 한 번씩 먹이를 줄 수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여러 번의 테스트 결과 합격!
수온을 맞춰주는 것 역시 최신식 방법을 활용했다. 바로 에어컨.
그해 봄에 마침 거실 에어컨을 바꿨다. 여름을 앞두고 매년 비실거리던 김연아 에어컨을 점검했더니 아무래도 어디선가 가스가 새고 있는 거 같다며 작년에 보충한 냉매가 70프로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했다. 다시 채워줄 순 있지만 내년엔 교체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서비스 기사님의 말씀을 듣고 매년 거슬리던 저놈의 에어컨을 이젠 그만 바꾸자고 의견을 모았다.
새로 산 에어컨은 스마트폰으로 원격 제어가 가능했다.
외출을 해서도 켰다 껐다 컨트롤이 됐다. 귀가 전에 미리 가동해서 시원한 집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기능이었겠지만 우리에겐 외출 중에도 어항 온도를 맞춰줄 수 있는 안심템이 되었다.
여름휴가로 부산에 내려가 있는 동안 집에 사람은 없었지만 에어컨은 가장 뜨거운 시간대에 어항의 수온 조절을 위해 몇 시간씩 자동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휴가 후였다.
이상하게도 수온이 계속 높았다. 얼음팩을 어항뚜껑에 올려놔 보기도 하고, 다이소에서 사 온 집게 달린 선풍기를 어항 위에 설치해서 돌려줘보기도 했지만 수온은 계속해서 30도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수온계 숫자만 보고 마음 졸이는 남편에 비해 어항 속은 평화로워 보였다.
"오빠야.... 이거 혹시 어항 온도계가 고장 난 거 아니가? 에어컨 돌려서 실내온도가 지금 26도인데 어항 물온도가 30 도일수가 있나?"
남편은 내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놀라더니 재빨리 새 수온계를 주문했다.
다음날 새로 도착한 수온계가 측정한 물속 온도는 25도.어쩐지 물속 애들은 편안해 보이더라니...
멀쩡한 물 온도를 두고 맘 졸인 건 물속 환경을 느낄 수 없는 물 밖 인간들 뿐이었다.
우리는 어떤 환경을 편안하게 느낄까?
개개인마다 편안한 온도와 습도가 다를 순 있다. 열이 많은 사람은 시원한 곳을 선호할 것이고, 나같이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따뜻한 지역을 좋아할 것이다. 그 기준은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누군가 정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편안함은 잊어버리고 남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추느라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경우를 발견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돈이 많이 필요 없는데 돈을 많이 벌려고 아득바득 고생을 하기도 하고, 남들 눈에 멋져 보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옷이나 신발에 내 몸을 구겨 넣기도 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인생을 사는 것인지, 진정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을까
내가 편안한 환경을 나 스스로 알고 있을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할 때 행복한것일까
혹시 나도 고장 난 온도계에 기준을 맞춰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그 기준을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