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꼬박 살아온 서울 토박이, 말이 좋아 토박이지 서울 촌년이다. 그것도 내가 살았던 동내를 크게 벗어나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건대 촌년.
겁이 너무 많아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모든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마치 나를 감시하고 지켜보는 눈처럼 느껴져 거리를 지나다니는 것이 두려웠을 정도라면 말 다 한 거지... 계단을 올라갈 때는 넘어져서 정강이를 부딪치는 상상을 했고 내려올 때는 굴러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라이터 불을 켤 때는 불이 붙어 손이 불타는 상상을 했다. 성냥불을 그을 때는 손가락이 타는 상상을 했다. 그러니 누군가를 만나고 뭔가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모험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남들 앞에서 그런 두려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꽤 센 척을 하며 살았다. 센 척을 하려다 보니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고 새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거만해지고 눈을 곱게 뜨는 법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모두에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만 그랬다. 알고 보면 세상 헐렁한 아이, 남의 눈치 살피며 기분을 맞추고 싶어 했던 소심한 아이.
왜 이렇게 양쪽 끝이야. 중간 어디쯤 있었다면 좀 더 편할 수 있었을까? 후회한들 어쩌겠나. 이것이 나인데.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어른들 탓이, 우리 가정환경 탓이 크다며 엄청나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만하며 성장기를 보냈다. 그래서 난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행복을 찾기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어딘가에 몰두해야만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책이다. 그냥 닥치는 대로 미친 듯이 읽어댔다.
어려서는 소공녀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같은 종류를 좋아했다. 나에게도 뭔가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좋았고, 읽는 그 순간 내가 그 안에 함께 사는 것 같은 환상감이 좋았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가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학원 책꽂이에 꽂혀 있던 빨간 머리 앤은 나를 가장 부지런히 피아노 학원으로 가게 하는 힘이었다. 보충 연습을 한다는 핑계로 일찍 가서 자리를 양보하며 읽던 책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중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만난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은 충격적이었다. 암송하기가 과제였는데 지금도 눈앞에 책이 그대로 떠오를 것 같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 길로 시집을 사서 읽고 또 읽고, 예쁜 색지에 써서 벽에도 붙여두고, 알록달록하게 꾸며 일기장에도 써 두었다. 가장 좋아하던 시는 ‘복종’이다. 왜 좋은 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처음 읽었을 때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가 나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 안에 있던 모든 책들을, 심지어 백과사전들까지도 그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백과사전에서 브라질의 문화를 소개하는 페이지에 축제의 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 기억난다. 파란색 비키니 같은 것을 차려입고 키메라같이 화려하게 화장을 한 여자가 양팔에 짙은 파란색의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만세를 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비슷한 차림의 여자들이 뒷모습을 보이며 서있었다. 연년생인 남동생이 내 옆에 앉아 “ 누나 저 여자는 왜 바닷가도 아닌데 수영복을 입고 있어? 저렇게 입고 어떻게 수영을 해? 왜 팬티는 엉덩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거야? 누나도 한번 해볼래?”라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호기심에 내 팬티를 돌돌 말아 엉덩이 사이에 넣어봤는데 얼마나 불편하던지 아직까지도 티팬티는 쳐다도 보지 않게 됐다.
우리 집 책꽂이 한쪽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던 책이 한 권 있었다. 청춘의 덫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표지가 왠지 인상적이어서 덥석 들고 읽었다. 표지 분위기와 제목이 왠지 추리소설일 것 같았다. 주말 아침에 방영되던 레밍턴 스틸이라는 시리즈물에 푹 빠져 있을 때라 아마 추리소설이라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던 가보다. 그런데 책을 펴보니 웬걸. 남녀 간에 얽히고 설킨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뭔가 나를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래봐야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텐데 뭘 얼마나 이해를 해서 그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까 싶지만 여하튼 2권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한참 후에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나와 혹시나 했는데 세상에 원작이 내가 읽은 그 책이었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여기저기 막 말하고 싶은 그 심정을 알려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쯤까지 안국동에 있던 한국일보 문화센터로 매주 토요일마다 그림을 배우러 다녔었다. 그때도 잿밥에 관심이 더 생겨서 열심히 다녔었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허가받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책값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주말이면 영풍문고와 교보문고를 돌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완독해 내야 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참 행복하고 꿈같은 시간이었다.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책 읽는 게 아무렇지 않을 때였는데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시 찾아보니 영 그럴 마음이 생기지를 않더라.
만화책도 안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봤고, 무협지, 로맨스 소설, 범죄 스릴러, 의학 소설, 수필, 동서양 고전, 역사소설 등등 손에 잡히는 책이란 책은 지나치지 못했다. 책을 읽는 그 순간만은 현실을 거스를 수가 있었다. 그 순간에는 지금의 내가 살아있는 이 세계는 없어지고 책 속의 세계만이 유일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읽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불속에 숨어 랜턴으로 책을 읽었다. 엄마 발소리가 들리면 얼른 랜턴을 끄고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요즘 아이들이 게임이나 미디어에 중독되어 사회문제라며 떠들어대는데 나도 나름의 중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 중독증상은 대학교를 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교에서는 더 쉬웠다. 대학교 도서관이라는 거대한 책방이 공짜로 내 앞에 놓여 있었으니 그냥 천국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들어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표지나 제목이 보이면 그대로 꺼내 그 자리에서 읽었다. 그 냄새, 그 분위기를 떠올리면 바로 그 장소로 돌아갈 수 있다. 아마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니. 이제는 패드들이 여기저기 비치되어 있고 전자패스로 입장을 하려나?
책 읽기라는 건강하고 귀한 일을 나는 현실 도피로만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던 그 시절의 내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니 그 또한 감사하다. 그렇지만 만약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의 소중한 시간을 부디 감사와 기쁨과 소망으로 채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제인 에어이다. 이모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는데 이모가 읽던 할리퀸 소설을 옆에 누워 함께 읽었었다. 남녀 간의 로맨스를 아주 에로틱하게 묘사하는 것을 읽으며 얼마나 찌릿찌릿 흥분이 되던지 남몰래 어지간히 얼굴을 붉히며 설레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제인 에어는 내가 읽었던 모든 할리퀸 소설을 합친 것보다 더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고 가슴 아프게 만들었고 더 많이 상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제인 에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지만 제인 에어라는 이름을 생각만 해도 단숨에 머릿속에 그려지는 여려 보이면서도 단단한, 강단 있는 멋있는 여성이 떠오른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오랜 시간 자연스레 글이라는 것을 끄적이게 되었다. 글이라고 해봐야 일기를 쓰는 것이 전부였지만 긴 시간 끄적여온 나만의 기록들을 들춰보며 시간 여행을 떠나곤 한다. 44살에 만나는 10살의 나는 너무 낯설고 때로는 기특하기도 하고 때로는 애잔하다. 초등생시절 그림일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나와 관련된 쓰기를 멈추어 본 적이 없다. 글을 쓴다는 것, 참 좋은 일이다.
이처럼 내 인생은 읽기와 쓰기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자유로움과 완전한 소유 그리고 보장된 비밀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겠다. 나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그 시간을 지금도 내어놓지 못하겠다. 이 정도 욕심은 부려도 되지 않을까? 나만의 세상에 빠져서 주변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새삼 깨달아진다. 나이 마흔 중반이 넘어서야 내게 있는 것들을 주변과 나누는 법을 배워간다. 그동안 내 안에 쌓아왔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풀어놓으며 나를 비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아직 풀어가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글 선생이 되었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아가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이 내게 그렇게 큰 보람이 될 줄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다. 부모님의 선택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는 어린 친구들에게 부디 즐거움과 감사만 전파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내가 맛보았던 그 충만한 만족감을 그들에게도 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초 폴란드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하지만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일은 글쓰기 수업이다. 꽤나 고민이 깊어진다. 더 전문적으로 잘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데 무엇을 어찌하면 좋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다. 이 즐거움의 여정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매일 생각한다. 더 완성형으로 성장해갈 나를 그리며 그날을 향하여 앞으로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