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감정에 대하여...

by 쓰샘

요즘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 주제가 감정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감정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 표현해야 하는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그 부분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 일부러 주제로 잡았다. 첫 시간은 감정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감정을 둘로 나누어 보았는데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라고 이름 붙이는 건 왠지 너무 딱 자르는 것 같아 따뜻함과 차가움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 감정을 따뜻함과 차가움으로 나눈다면 너에겐 어떤 게 더 좋을 것 같니?"

라는 질문에 당연히 모든 아이들이

"따뜻함이요."

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비슷한 결의 대답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답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 맛에 아이들과 수업을 한다고 생각을 했다. 한 친구가 말했다.

"저는 당연히 차가운 게 좋아요."

"너 차가운 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좀 어둡고, 부정적인 뭐 그런 거요."

"그런데 그게 좋다고?"

"네, 저는 따뜻한 말들은 왠지 오글거리고 듣는 순간 얼어버릴 것 같아요. 진짜 싫어요. 차라리 좀 차가운 말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따뜻한 말들은 들으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사랑스럽다. 설렌다. 이런 말들은 진짜 최악이에요.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 같은 거 봐도 따뜻한 말들이 오가면 결말이 뻔하잖아요? 그런데 차가운 말들이 튀어나오면 어떻게 끝날지 상상이 되지 않아요. 뻔하지가 않다고요. 거기다가 모든 이야기들은 처음에 행복하면 꼭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싫어요. 차가운 말이 들었을 때 더 편하게 들리고 대화를 이어가기도 더 쉬워요"

정말 너무 신선한 반응 아니야!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이라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 부모님이 너에게 차가운 말만 쏟아내면 좋겠니?"

"뭐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어요. 부모님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따뜻한 말이든 차가운 말이든 그래요. 근데 친구들은 진짜 안돼요. 친구가 저에게 너 참 따스하다, 너를 보면 설렌다 이러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신선한 반응을 보이는 친구가 있는 반면 많은 친구들이 수업시간 내내 불편해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자기의 감정을 관찰해 본 적도 없을 뿐더러,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래도 부모님께 느끼는 감정이 가장 선명하리라 싶어 부모님을 대상으로 삼아 질문을 했었다. 완전 착오였다. 한 친구는 잘 모르겠다는 답만 반복했다. 급기야 말하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닫았다. 할 말이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모습으로 보였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서였을까?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바로 단어들의 뜻을 설명하는 평범한 국어 수업으로 넘어가 버렸다. 다음 주에 글쓰기로 이어가야 하는데 벌써 걱정이 된다.


따듯함과 차가움중 어떤 것이 더 좋으냐는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자기는 무감정 하다고 했다. 느낄 수가 없다고. 수업 시간에 감정 조절이 잘 안되어서 때때로 애를 먹이는 친구라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학교에서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진짜로 아무런 감정도 안 드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속으로만 말해요. 그럼 아무도 못 듣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다해버려요. 속으로만요. 그럼 좀 시원해져요."

너무 슬펐다. 아이의 학교 생활이 어떤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음이 아팠다.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듣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도 그냥 조용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뒤이어 집에서는 어떠냐는 질문에 집에서는 감정이 좀 생긴다고 했다. 속으로 안도하며 수업을 이어가려고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께 정말 듣고 싶은 감정 단어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감정 단어가 무어냐고.

"저는요 욕을 듣고 싶지 않아요. 지랄하고 있다. 이런 것도 싫어요. 짜증 난다는 말도요."

내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지만 아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답답했다. 나도 욕이 정말 싫다. 대체 왜 욕을 하는 거지? 하.... 한숨만 나왔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더 솔직한 말을 해줬는데 절대 누구에게도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을 하고 왔으니 지퍼를 채워야지. 욕하는 모든 입들을 정말 꿰매어버리고 싶다. 진심으로!!!!


한 친구는 격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개 싫다'라는 표현을 쓰기에 좀 더 예쁜 표현을 쓰면 어떠냐고 했더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개가 왜 나쁜 거예요? 왜 개를 붙이면 나쁜 말처럼 생각해요? 개가 나빠요? 존나라는 말도 그냥 엄청 많이 이런 뜻 아니에요?"

순간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아찔했지만 원래 개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쁜 말처럼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해 주고 넘어갔지만 존나에 대해서는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주제를 잡고 수업을 진행하려고 했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통통 튀어갔지만 어린 친구들의 마음을 엿보게 되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다. 여러 친구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 들으니 너무너무 속상했고, 공감도 되었다. 나도 그런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의 수업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누르지 말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긴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에 쉽게 상처받는다는 것을 모두 알지 않을까? 가까울수록 더 예쁘게 곱게 귀하게 대해주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게 된다. 내 입부터 그렇게 바뀌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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