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진짜?

by 쓰샘

타향살이를 하다 보면 내 나라 이름, 내 나라 글자만 봐도 절로 눈이 가고,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18년 차 정도 되면 좀 무디어지고 현지에 길들여질 법도 한데 사람 참 안 바뀐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이곳이 참말 폴란드인가 생각을 해 봐야 할 정도이다. 오히려 집에서는 더 한식을 챙겨 먹고, 한국 예능이나, 드라마를 챙겨보고, 뉴스도 꼬박꼬박 챙겨보게 된다. 이런 것들은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문화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K문화라는 이름으로 이곳 폴란드까지 한국의 대중문화가 흘러들어오고 있다: 그 덕에 18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고, 한국인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제일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일반 마트만 가도 라면을 비롯한 한식 재료들을 구입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식‘의 만족도가 높아져 가는 것 만도 감격스러운데 이제 문화생활까지 가능한 정도가 되었다.


며칠 전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Bez wyjścia’(출구가 없다라는 뜻)라는 제목의 영화광고를 봤는데 이병헌 배우가 나오는 것이다. 깜짝 놀라 클릭해 봤더니 며칠간 시내의 영화관에서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 ‘를 상영한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들이 흥행할 때마다 종종 상영을 해주곤 해서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말로 된 영화를 마음 편히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올해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에 얼른 티켓을 예매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전부 박찬욱감독 영화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 미나리가 있었으니 전부는 아니구나.’


모처럼 남편과 친구 부부와 함께 영화관 데이트를 시전 하였다. 함께 간 친구 부부도 한국말로 볼 수 있다길래 무조건 콜 했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이렇게 감격스러울 일이 아닐텐데. 무튼 나름의 감사를 가지게 된다. 멀티 플렉스는 아니었지만 규모가 꽤 되는 영화관에서 가장 큰 관에서 상영해 준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자부심을 가지게 해 주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자부심이라니 좀 우습지만 내 나라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것이 나를 그리 만든다. 한국 사람들만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폴란드사람이 대부분이라 더 그랬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줄거리와 결말을 찾아서 꼼꼼히 알고 가야 마음 편히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다른 사람이 보자면(특히 남편) 괴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이번에도 폭풍 검색으로 디테일한 장면과 나름의 해석들까지 곁들여 공부를 단단히 하고 갔다. 책을 볼 때도 먼저 꼼꼼히 책에 대해 사전조사를 거친 후에, 때로는 결말 부분을 뒤적이고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랑 같은 결이겠다. 가슴 조이는 긴장감을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무서운 놀이기구나 스릴 있다 하는 어떤 것들도 다 별로다. 나름의 예습 과정을 거친 후 영화를 보아서 그런지 좀 더 여유 있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뭐라고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겠냐만은 이곳은 내 공간이니 마음껏 풀어보련다.


첫 번째 든 생각. 박찬욱이 박찬욱 했구나.

전체를 아우르는 연출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 화면 안에 배치한 여러 것들과 갖가지의 색들, 하나하나 무심한 듯 보이지만 디테일이 살아있어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조차도 연출한 듯이 보이는 듯했다.


두 번째. 배우들 참 대단하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저 인물이 왜 꼭 저기서 저렇게 나와야 되지? 도무지가 개연성이 없는데라고 부조화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쩜 그렇게 다들 녹아들어 조화를 이룰 수가 있을까? 연기에 대한 욕심? 열정? 급이 다른 연출력? 뭐가 됐든 시투, 리투로 출연한 개들까지 최고였다.


세 번째. 지루하지가 않다.

남편이 영화관 가기 전 물었다.

“몇 시간짜리야?”

“139분!! “

“헐~!! 자다가 나오겠네. 엉덩이 아파서 어떻게 앉아있지? 우와~ 2시간이 넘는다고?”

등등 내내 걱정을 했는데 무색할 정도로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마지막 감상평은

‘진짜 어쩔 수가 없었을까? 자기 합리화를 위한 비겁한 변명 아닐까?‘

였다.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한마디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뭉개고 넘어가며 모든 책임으로부터 피해 가려는 철저히 이기적인 모습들이 참 처절하게도 그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너무도 공감 가는 내용이라 나로서도 크게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는 말 한마디를 내세워 내 한 몸 피하기에 급급한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기에.


기준과 잣대가 점점 불분명해진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명확히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모호하게 흐려져가고 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에 딱 맞아 들어져 가는 시대를 살며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얼마나 책임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정정당당함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하지는 말자. 무한경쟁시대라지만 지켜야 할 분명한 선이 있음을 절대로 잊지 말자.


“분명히 있을만한 이야기라 영화는 재밌게 잘 보고 나왔는데 참 찝찝한 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

라는 남편의 감상평. 우리가 지금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시간을 눈앞에 두고 있기에 더 깊이 와닿는다. 현실이 녹록지 않겠지만 잘 감당해 나가 보자고 서로를 도닥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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