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낯

너뿐이야

by 쓰샘

왜 남편에게는 그렇게 화가 날까?

똑같은 상황에서도 남편이 하는 말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그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혹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냥 별스럽지 않게 넘길 수가 있다. 타격감이 없다.

그런데 남편이 감정을 건드렸다면 완전히 말이 달라진다.

일단 당혹스럽다. 내 감정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아마 동공이 촛점을 잃기 시작하고 표정이 무너져 내리고 있을 것이다.

얼굴로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수치감이 느껴진다. 마치 남편에게 조금도 소중하게 여겨지지 못하는 버림받은 아내가 된 것만 같은 비참함이 훅 몰려온다. 목구멍으로 뭔지 치밀어 오르면서 나도 놀랄정도로 날카로운 말들이 쏘아내듯이 팍팍 날아간다.

남편이 그런 내 상태를 알고 좀 받아준다고해도 겉으로는 표나지 않지만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해버리는데, 만약 받아주지 않는 날은 너 죽고 나 살고, 죽일 듯이 소리를 질러가며 나 잘났다를 연발한다.


나는 내가 나름대로 자기 조절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유독! 남편에게만은 그게 안통하는 것일까? 정말 한동안 엄청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유레카!!!!


우리가 연인이기 전에 나에게 남편은 이 세상 둘도 없는 최고의 친구였다. 동성친구들과 이성친구 모두를 합해도 남편보다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를 잃을 결심을 하면서도 남편을 만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편안함‘이었다. 그 애 앞에서는 뭘 해도 된다는 안도감. 트림을 해도, 방귀를 뀌어도, 심지어 부스스 씻지도 않고 무릎 다 튀어나온 츄리닝을 입고 만나도 하나 이상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완전한 나로써 존재하게 해주는.


근데 결혼을 하고 생각지 못한 갈등이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더니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사이가 되어버린거다. 그 눈물의 시산도 언젠가 풀어낼 날이 오겠지. 그때보다는 빈도나 강도가 훨씬 덜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증말증말 비참 그 자체였다. 내 눈을 내가 뽑고 싶었지. 사람 보는 눈이 어째 이 모양인가 싶어서. 육아와 해외생활이라는 고단하고 팍팍한 시간을 보내면서 내 안에 생긴 진저리 처지는 고독감과 허전함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수많은 어려운을 흘려보내고(극복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그저 지나간거다) 지금 다시 조금씩 맞추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때때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던 그 사람이 그리워진다. 내가 변한만큼 그도 변한것이 당연한 일인데 옛날 그 남자가 소환되겠냐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남편에 대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난 아직 이 사람이 좋다. 지금도 여전히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당연히 어쩌다 한번) 아직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괜스레 땀이 나고 더워진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존재로써 만족스러워 지는 순간 내게 참 소중한 사람이라 깨닫는다. 그동안 아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그냥 콱 밟아 누른다. 그럼 내 맘이 힘들어질까봐. 너무 이기적이다. 내가 더 받고 싶은 걸 어쩌겠나.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받고 싶고, 가장 인정받고 싶은 한 사람.


남편아~ 날 좀 그냥 받아주라. 우린 딸도 없으니 내가 딸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덮어놓고 이쁘다 이쁘다, 니 말이 다 맞다 해주면 안되겠니? 그럼 내가 좀 성질이 덜 날 것 같다. 그래야 너도 편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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