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2

외할머니댁

by 쓰샘

여름이면 사람 반, 물 반이던 서해 바다 대천 해수욕장에서 해마다 여름을 보냈다.


바닷가 한쪽 모래사장 위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뺑뺑이라 부르던 놀이기구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가 그 시절이 떠올라 한번 탔다가 죽을 것처럼 무서워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 뺑뺑이를 그때는 한번 마음 놓고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다행히 외할아버지 친구분이셨던 OB상회 할아버지가 주인장이셔서 아주 가끔 외할아버지 뺵으로 타보기도 했다. 한번 타는데 500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결코 싼 값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OB상회 할아버지를 떠올리니 갑자기 쭈쭈바 생각이 간절하다. 다루기 쉽지 않은 새침한 내가 쭈쭈바 앞에서는 멕을 못 추었단다. 그래서 OB상회 할아버지는 나를 쭈쭈바라고 부르셨다. 지금도 “쭈쭈바 왔냐~” 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바닷가 바로 앞에서 '황해 여인숙'을 운영하시던 외조부모님들은 나이가 드시면서 힘에 부쳤는지 여름이면 우리가 잠잘 방과 부엌을 뺴고는 통째로 세를 주셨다.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중앙에 마당이 있고 'ㄷ'자 모양으로 방들이 빙 둘러있는 형태였다. 손재주가 좋았던 외할아버지가 직접 만드신 평상들이 마당에 있었고, 방마다 앞쪽으로 걸터앉을 수 있도록 갈색 페인트로 칠해진 나무로 된 평상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문 왼쪽으로 공동 샤워장이 2개 있었고 커다랗게 시멘트를 바른 수돗가가 있었다. 샤워장 뒤로는 화장실도 있었는데 몇 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문 오른편으로는 여인숙을 운영하던 분들이 천만으로 설치해 놓은 임시 마트와 포장마차가 있었다. 여름에만 잠깐 문을 여는 이곳은 운영을 안 할 때는 들어갈 수 없도록 닫혀있었는데 왜 그렇게 들어가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린 내 눈에 그곳에 다녀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신기했다. 나에게는 할머니 집이지만 그들에게는 여름 피서철을 위해 놀러 온 관광지였다. 특히 단체로 우르르 몰려오는 언니, 오빠들에게는 유독 눈이 더 갔다. 언니들이 입고 널어놓은 수영복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수영복이나 그 수영복이나 같은 수영복인데 왜 달라 보였을까. 입는 사람이 달라서였겠지? 대문 옆 수돗가에서 할머니가 나와 동생을 세워놓고 물을 부어 모래를 닦아낼 때면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도 왠지 부끄럽고 창피했었다. 할머니와 우리가 사용하던 샤워실은 부엌을 지나 할머니방 뒤쪽에 설치되어 있어서 지나가려면 모래를 닦아내야만 했는데 꼭 우리 샤워실로만 가서 씻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등짝을 참 많이도 맞았다. 모래도 털지 않고 부엌을 지나가면 잘 쓸리지도 않는 모래 청소는 할머니 차지였을 텐데 그런 것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그때는 없었다. 내 손으로 청소를 하며 살아야 하는 지금이 돼서야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해변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했다. 온갖 불빛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고 여기저기서 총쏘기, 화살 던지기, 링 걸기를 비롯한 온갖 놀이기구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군데군데 여인숙 앞에 자리 잡은 간이식당들에서는 홍합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국물에서 나는 비릿하고 맛있는 냄새들과 오징어 튀김 냄새들이 한데 뒤섞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밖에 나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해가 지면 우린 외출을 할 수 없었다. 단 하루 해변 광장에서 영화 상영이 있는 날은 할머니 손을 잡고 합법적으로 거리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 전혀 깜깜하지 않던 그 거리를 당당히 걸어 나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 진짜 기대되었다는 것과 개선장군이 훈장을 달고 걷는 걸음처럼 당당히 걸었다면 좋았을 텐데 왠지 부끄럽고 민망해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몸을 베베꼬며 걸어갔던 것만 기억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나만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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