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do it!
나는 초보 글 선생이다.
처음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던 날 나도 모르게
“그냥 이모라고 해도 돼!”
라고 해버렸다. 준비되지 않은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혼자 무척이나 무안했었다.
언제부턴가 스스로 준비가 철저히 되었다고 생각이 돼야 확신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었다. 결론은 내 의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늘 떠밀리듯이 일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엔도 역시 덜컥 일을 저질러 버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엠비티아이 J형이라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라고 떠들었는데 실상은 떠밀려서 눈앞에 닥쳐야 일을 해낼 수 있는 인간임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민망하다.
첫날, 첫 학생을 마주하던 그 떨림과 감격, 기쁨과 설렘을 뭐라 말해야 할까? 온갖 좋은 감정을 갖가지로 버무리면 나올 수 있는 그런 마음이었다. 드디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그러나 자신이 없어 한없이 미루어 두기만 했던, 나의 꿈으로 한 발짝 내밀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 목소리의 떨림과 손가락의 떨림을 들켰을지도 모른다. 수업 내내 양 볼이 뜨겁게 달아올라있는 느낌이었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있었는데 마치 둥둥 떠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렇게 어린(선생님으로서) 내게 선생님이라는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신 예준이 어머님께, 태라 어머님께, 유찬이와 유나 어머님께, 예현이와 시원이의 어머님께, 연우 어머님께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드린다.
처음 수업을 시작하던 때 선생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확신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열심히 동화책도 읽고, 열심히 독후감도 쓰고, 열심히 여행기도 쓰고, 열심히 문제집 풀이도 봐주었다. 일단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자 했었다. 나의 무조건적인 열심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곳이 한국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수년 내에 한국으로 돌아가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 아이들을 두셨거나,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 모국어 수업이 필요하다 느끼시는 부모님들의 간지러움을 긁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딱 맞아떨어진 게 아니었을까. 나로서는 감사가 절로 나오는 부분이다.
나 역시 두 자녀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외국에서 키우고 있어 백 퍼센트 공감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내가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도와줄 수 있는 공부가 국어뿐이어서 유난스럽게 아이들을 닦달했었다.
한글을 가르친 이후로 매일 성경 1장씩 쓰기, 저녁마다 성경 1장씩 소리 내어 읽고 말씀에 대해 나눔 하기, 매일 동화책 소리 내어 읽기, 책을 읽고 나면 엄마에게 와서 말로 내용 설명해 주기, 잠자기 전에 동화책 3권씩 골라오면 읽어주기 등등 지금 생각해 보니 힘들었을 것 같다. 엄마라서, 것도 무서운 엄마라서 어쩔 수 없이 따라와 줬겠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찌 됐든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크게 반항하지 않고 따라와 준 아이들이 새삼 고맙다. 덕분에 어디를 가든 이상한 칭찬을 받곤 한다.
"애들이 어쩜 이렇게 한국말을 잘해요?"
"한국에 사는 아이들보다 더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것 같아요."
"발음이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가 있죠?"
등등 일단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이게 그렇게 칭찬받을 일인가 싶기도 하다. 나에게 선생의 기회를 주신 분들이 나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신뢰를 가지게 되지 않았겠나 싶어 이 또한 감사하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 덕분인 것 같다.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잘'에 대한 고민이 있다. 아마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계속 달고 갈 고민 들이다. 이렇게 고민하며 나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야들을 생각해 보고 글을 찾아읽고 자세히 알아보게 된다. 좀 더 깊이 있게, 정리하여, 나누어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고집들도 하나씩 덜어내는 시간이다.(이건 전적으로 아이들이 가진 순수함과 다양성의 힘에서 나온 변화이다.) 이 모든 과정들이 정말로 정말로 즐겁고 기쁘고 신이 난다.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하반기에 쓴 아이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수업 이름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생각하고 쓴다는 의미를 담아 [띵쓰]로 정하였고, 책 이름은 자동적으로 띵쓰북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쓰샘이라 명명했다. 혼자 이루어낸 일이 하나도 없었다. 주변에 나를 지지하고 믿어주는 이들의 마음이 든든하게 나를 받쳐주고 있다. 아이들 역시 마음속깊이 담아 놨던 여러 가지 것을 꺼내기 위해 애쓰고, 용기를 내주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고 있는 우리들이 기특해서 울컥 눈물이 난다.
언제까지나 꿈을 꾸며 미래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을 마주하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만 같은 암담함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좌절하던 내게 너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준 모든 분들의 응원이 있었다. 나를 일어켜 주던 그 힘을 의지해 용기를 내게 되었다. 지금도 두렵고, 떨리며 겁이 나지만 어쨌든 한 걸음은 내딛었으니, 방향을 잡았으니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겠지. 아직 방향을 몰라 헤메고 있는 이들에게, 주저앉아 막막한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너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당장 나와 같은 지붕아래 있는 너희들에게 그리고 멀고 먼 어딘가에 있을 당신에게. 온 우주에게 나의 응원의 마음이 전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