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외할머니 집

by 쓰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쯤까지 집안 형편상 방학 동안은 바닷가에 사시는 외할머니댁에서 보내야 했다. 그 시간이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만 해도 서운해지고 아련하게 그리워지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부모님과 아픈 삼촌(둘째 외삼촌인데 전신 마비 환자 셨기에 나와 동생은 아픈 삼촌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삼촌을 부를 때도 ‘아픈 삼촌’이라고 했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의 시선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임과 동시에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슬픔이 있었다. 아무튼 집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그리워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분명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집을 떠난다는 그 자체가 무척 싫었던 것 같다.


출렁이는 바닷물속에 몸을 담그고 몇 시간이고 물놀이에 푹 빠져 지내는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만큼 즐거웠다. 지금도 그 시절, 그 시간, 내 눈앞에 펼쳐 있던 연녹색의 투명한 물과 그 안의 모래들, 바닷가를 가득 채우고 있던 파라솔들과 수많은 관광객들, 투명한 유리상자를 줄로 매어 봉 양쪽에 달아 어깨에 메고 다니며 온 해변을 돌아다니며 “망개 떠억! 망개 떠억! 쑥개 떠억! 쑥개 떠억!”하고 외치고 다니던 아저씨들의 모습들이 선하다. 군데군데 높은 의자 위에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빨간 모자를 쓰고 짧은 국방색 반바지를 입고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 있던 구조대원들과 여기저기에서 커다란 검은색 고무 튜브에 각자의 상호를 흰 페인트로 적어놓고 호객행위에 바쁜 시커멓게 그을린 아저씨, 아줌마들의 모습까지 매우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침이면 바닷가 내려가는 돌계단 끄트머리에 앉아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물이 빠지면 외할아버지는 입 한쪽에 담배를 물고 한 손에는 낡아 구멍이 송송 난 파라솔, 한 손에는 삽을 들고 바닷가로 내려가셨다. 삽으로 웅덩이를 크게 파고 그 중간에 파라솔을 꽂아 주시면 수영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던 나와 남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그 웅덩이로 들어가 모래를 긁으며 종알종알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물속에서, 남동생은 모래사장에서 각자 심취해 놀고 있으면 저 멀리서 외할머니가(가끔은 할아버지가) 머리에 쟁반을 이고 오셨다. 거기엔 수박도 있었고, 우리를 먹일 퉁퉁 불은 라면이나 떡볶이 혹은 콩나물국, 미역국과 밥, 볶은 김치 등이 담겨있었다. 그 사랑을 먹고 내가 자랐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지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어 감사하다. 내게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그때 받은 그 사랑이 5할은 넘지 않을까? 자라오며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따질 수 없지만 그분들께 받은 그 사랑은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사랑임이 틀림없다.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내 아이들은 외국에서 자라면서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넉넉한 품을 맛보고 누리며 성장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 품에 앉겨 할 수 있는 만큼 어리광을 부리고, 그 품에서 들려주시는 기도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라난 아이들은 나중에 얼마나 큰 사랑을 뿌리는 어른이 되어 있을까? 이제는 이곳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할아버지와 산책하던 길을 바라보며 그 시간을 추억하는 아이들을 볼때마다 내 감사는 더 커진다. 나에게 대천 해수욕장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소중한 곳이라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엘라니라는 폴란드의 소도시가 그럴테다.


세상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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