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라로 간다면(2)

12월, 대만에서

by 제이

대만 싸다고들 하는데 진짜 안 싸다. 한국에서도 강남에 안 사는데 또 언제 타이베이 중심가에 살아볼 수 있을까 싶어서 101 빌딩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분명 필요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쉐어하우스 1인실 장기 투숙했고 첫날 가자마자 그냥 4만원을 훅 썼다. 난 제법 타국에서 적응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어, 한자, 영어를 하나도 모르는데 이곳 저곳 돌아다닌 나.. 멋있을지도? 라고 생각하며 사는데.. 커피 값을 바가지 당했다. 역시 한치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


안개 하나 없는 밝은 날, 경비 아저씨의 알 수 없는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기분이 너무 좋았고 오늘은 안 가본 곳을 꼭 가고 싶었다. 학교를 등록하고 근처 돌아 다니다가 진짜 고풍스러워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을지로에 있을 법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가게에서 느껴지는 세월감, 커피를 내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난 바 테이블로 안내 받았다. 창가 쪽에 앉고 싶었지만 이 모든 생각과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냥 안내해준 대로 앉았다. 할아버지가 주문을 받았는데 영어로 대충 말하는 것만 알아듣고 주문표를 폈다. 근데 진짜.. 진짜 너무 비싼 가격에 놀랐다. 그래서 가장 싼 레몬에이드를 마시려는데 할아버지가 급하게 말렸다.


"기왕 왔으니까 우리 커피를 마셔봐. 여기 사람들 다 '스페셜 티'를 마시고 있잖아."


스페셜 티는 한화 2만원이었다. 빠른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거의 강매하던 할아버지에 못 이겨 다른 메뉴를 살폈다. 애초부터 학교 등록만 하고 나올 생각이라 큰 돈을 가져오지 않았던 나는 스페셜 티를 거절하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것도 500원 모자라 평소에 먹지도 않았던 핫으로.


할아버지는 내 앞에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화 1만 2천원짜리 커피는 뭐가 다를까. 난 한국에서도 1만 2천원짜리 커피는 마셔본 기억이 없다. 대체 뭐 얼마나 맛있길래.. 란 생각으로 커피를 기다렸다. 드디어 커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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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깟 커피 마시려고 내가 그 큰 돈을 냈을까.


마시면서 생각해봤다. 과연 이 할아버지는 무슨 자신감으로 커피를 추천했을까. 어쩐지 이 가게 사람들이 다 나이가 많던데 이 정도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 근데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진짜 맛 없다. 차가운 거 마시고 싶다. 뜨거운 커피는 맛을 음미하면 원두의 질이 다 느껴진다던데 난 아직 커피 지식이 부족하다.


라는 짧은 생각을 마치고 짜증이 확 나서 5분 만에 마시고 나와버렸다. 금방 나왔는데도 뜨겁지도 않네. 별 볼 일 없는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난 강매를 당한 걸까. 지하철을 타서 그 카페 후기를 봤는데 나처럼 당한 사람이 한 둘 아니었다. 갑자기 스트레스 받으니까 돈 쓰고 싶어져서 눈 앞에 있던 회전 초밥 집으로 들어갔다. 초밥 7접시를 먹었는데 한화 1만 2천원 나왔다.


커피 한 잔과 초밥 7접시는 똑같다. 오늘도 헛돈을 썼다고 생각하며 언제쯤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낭비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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