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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어 Dec 26. 2023

다음 소희

다음의 소희는 없길 바라며


 대학생 때  알지 못하는 이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쇼핑몰 분양권을 홍보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불쾌해하는 이도 있었고 반말을 찍찍 써대며 무시하는 이도 있었다. 신호가 울리기까지 긴장모드에, 전화가 연결되면 모르는 상대에게 한없이 나 자신을 낮추며 설명하는 일을 한 달 동안 하고서 50만 원의 돈을 받았다. 그 뒤로 한동안 전화 공포증이 생겼다. 받는 것도 거는 것도 은연중에 겁이 났다.



영화 다음 소희의 소희는 인터넷과 티브이가 결합된 상품의 콜센터 해지방어팀에서 일을 한다. 대기업이라는 담임의 말과 달리 대기업의 하청의 하청업체쯤 되는 곳이다. 당장 해지를 원하는 고객의 콜을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려 해지가 힘들게 만든다. 돌고 돌아 연결된 고객은 소희와 콜이 연결되자마자 욕설을 쏟아낸다. 특성화고 취업반 학생이 현장실습을 나와서 겪는 이 감정노동은 너무나 가혹하다. 욕설과  성희롱까지 감내하며 '고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야 하는 일이 '감정노동'이라는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포장되어 있다.


  성과급 미지급과 시간 외 근무 등 실습생들의 부당한 처우를 내부고발한 팀장의 자살사건이 발생한다. 회사는 팀장을 추모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의 죽음을 발설하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각서를 받아낸다. 소희는 회사 내 유일하게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던 팀장의 죽음 이후 콜수를 채우기 위한 괴물이 되어간다. 성과율 1위를 달성하지만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것을 일종의 보험이라며 회사는 당연시 여긴다. 인센티브를 줄 수 없으니 네가 좋아서 시작한 일 싫으면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

  관리자와 다투던 중 주먹을 휘두른 이유로 무급휴직 3일 처분을 받고서 결국 소희는 세상을 등지고 만다. 


 밖에서 몸 쓰는 것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앉아서 전화나 받고 상담하는 일인데 뭐가 힘드냐는 시선의 사람들은 모른다. 목소리만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게 얼마나 많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빼앗는지. 대놓고 무시하는 말투와 욕설에 얼마나 자존감이 낮아지는지. 이 모든 정신적 핍박을 견딘 이에게 정당한 보수조차 지급하지 않는 영화 속 어른들에게 화가 난다. 아이의 죽음 앞에 어느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에 영화 속 형사처럼 울어버렸다. 원래 문제 있는 아이로 치부하며 소희의 죽음의 원인을 그 아이에게서 는 못된 어른들의 뻔뻔함과 잔인함에 속이 울렁거렸다.


다음소희는 내게 세상에 있는 수많은 또 다른 소희들이 겪는 부조리함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었다.

업체의 최전방에서 실습생이라서, 어리다는 이유로 철저히 '을'이 되어 부당함을 안고 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치일진대 그 당연함을 왜 지키지 않는 것인가. 제대로 일 할 환경도 갖추지 않고서 일을 시키는 주체들에 대한 감독은 이뤄지고 있는가.

 당연함을 어긴 자들에게 법은 제대로 심판하고 있는가.


다음의 소희는 부디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갖고자 한다.

지금의 어른들은 모두, 제발  다음 소희를  봤으면 한다.





  

 

 



#다음소희#넷플릭스#영화감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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