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만났던 친구와 겨울이 되어서야 다시 만났다. 그녀의 오프와 내 오프날이 어쩌다 맞아떨어져서 금 같은 시간을 만들었다. 친히 나를 태우러 아파트 지하주차장까지 와 준 그녀가 고맙고 남의 차를 타고 평일 오전 외곽으로 맛집을 찾아가는 길은 더없이 행복하다.
오늘 같은 잿빛 날씨에 저절로 생각나는 뜨끈 얼큰한 육칼 국물을 맛보며 "역시 이거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밥을 먹으며 나누는 소소한 근황토크도 즐겁다.
그녀는 내가 이곳으로 이사오고서 처음 사귄 나의 친구다. 같은 유치원 엄마, 동네 엄마처럼 아이 때문에 친해진 것이 아닌 오롯이 내 친구이기에 푸석한 얼굴에 추레한 옷차림에 모자만 눌러쓰고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는 아파트도 다르기에 속 이야기도 터놓을 수 있다. 아, 물론 그녀가 남 얘기를 함부로 전하지 않는 성숙한 인격체이기에 털어놓기가 더 쉬운지도 모른다.
후식 커피타임에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쏟아져서 육아와 일, mz세대, 고딩엄빠로 이어지다가 방향을 바꿔서 골든걸스로 흘러갔다. 쟁쟁한 4인의 디바들이 걸그룹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멋있으며 콘서트를 연다면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들처럼 멋있게 늙고 싶다는 내 말에 난데없이 "넌 젊게 늙을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젊게 늙는다'는 말 자체는 모순된 표현일진대 듣기에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인디밴드 음악을 찾아 듣고 아이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쓰고, 화제가 되는 책과 영화를 찾아보는 내 모습이 그렇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들인데 누군가에겐 그렇게 보였다는 사실이 생경하다.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다는 게 그녀에겐 생동감 있어 보였나 보다. 아무도 알아주진 않지만 나를 스스로 채워가기 위한 일들이 인정받는 기분이다.
전혀 안 보이던 새치가 하나 둘 보일 때마다 뽑아버리고, 여전히 매끈한 피부를 가진 내 또래 여자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날이 많았다.
'나는 나이며, 변해가는 내 모습도 인정하자.
젊게 스스로를 채우며 살아가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친구의 한마디에 자존감을 찾는다.
지금 난 잘하고 있다.
keep going
#친구#만남#일상#자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