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알바를 시작했다
주방보다 더 험난한 현장. 학원
주방일 일 년 만에 건초염을 얻었다. 길어봤자 하루 네 시간, 주 4일의 노동이기에 어디 가서 몸 쓴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알바였는데 마치 몇 년은 주방을 전두 지휘라도 한 사람의 손목처럼 고장 나 버렸다. 할 수 없이 이젠 온전히 몸에 밴, 수월하기 그지없는 그 일을 그만두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텅 빈 집안에 혼자 있는 평일 오전이 적응되지 않고 티브이도 넷플릭스도, 음악도 지겹다. 뭐지...
누군가와 어울리고 같이 일하고 싶다. 뭐라도 시작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일 년의 시간 동안 사회적인 동물이 되었나 보다. 집에만 있는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졌다. 부지런하고 똑소리 나는 이상적인 주부와는 거리가 먼 나는 집안에서 식구들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게 너무 힘들다.
알바몬과 알바천국을 계속 들여다보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진다. 몸 안 쓰고 괜찮은 시급이 주어지는 알바는... 바로
학원이다. 내가 생각한 직업군. 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 누군가를 가르치며 같이 성장하는 곳. 원대한 기대와 목표를 가슴에 담으며
독서 학원에 지원하고 면접을 봤다.
아.. 그런데 평범한 독서가 아니라 정독, 속독을 훈련하는 곳이다.
명상훈련부터 쉴 새 없이 5가지 훈련을 초시계와 함께 진행하고 글쓰기, 문제 풀이, 첨삭까지.
논스톱 국어학원의 끝판왕인 곳.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세분화된 단계에 어질어질하다. " 선생님 저 이제 뭐해요?" 아직 나도 모르는데 아이들이 이 말을 꺼내면 몇 초간 정적이 흐른다.
' 얘들아.. 사실 나도 잘 몰라! 모른다고!! 제발 늘 하던 루틴대로 알아서 해줄래.'
당혹감을 감추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해야 한다. 말이 많은 학생은 끊을 줄 알아야 하고, 느린 학생은 인내심을 쥐어짜 내어 다시 알려줘야 한다.
머리를 들쑤시는 4시간이 지나고 문을 열고 나오면 허기와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뻣뻣한 뒷목은 잠들 때나 긴장이 풀려 부드러워진다.
아.. 머리 쓰는데 주방에 있을 때보다 온몸이 더 천근만근인 건 무엇 때문일까..
이 색다른 긴장감에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순간이 오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걸까?
어쩌면 주방보다 더 험난한 현장에 나 스스로를 내던지고 만 건 아닐까
#국어학원#알바#선생님#초시계#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