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혼란
전 남자친구와 싸우거나 대화할 때면, 그는 늘 나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말을 하곤 했다. “너는 ‘나 때문에 내가 불행해지니까’ 헤어지자고 말하잖아. 나는 그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 그건 그냥 비겁한 회피고 변명일 뿐이야.”
먼저 이별을 고했던 그가 다시 나를 붙잡으러 와서 내뱉은 그 말은, 나를 탓하는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그 말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지키기 위해 내뱉었던 나의 가장 처절한 진심이었다.
당시 나는 극심한 우울증과 자해, 바닥을 치는 자존감과 그로 인한 피해망상 속에 살고 있었다. 그 늪 안에서 나는 늘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역시 나 같은 건…’, ‘왜 맨날 나는 이 모양일까?’, ‘또 나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어.’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을 티 내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그는 나라는 어둠에 먹히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다 망쳤어, 내가 다 망가뜨렸어’라는 죄책감은 나를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더러워지는 것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함께 먹히는 것을 지켜보는 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나의 최선이 그에게는 고작 도망가기 편한 수단으로 보였다는 것이, 아주 조금은 원망스럽다. 결국 우리의 연애는 더 이상 이어 붙일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 난 유리처럼 끝이 났다.
오늘, 알바가 끝나고 들른 동아리방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쳤다. 사람들 틈에서 나갈 준비를 하던 그와 최대한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사실은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썼다.
하지만 대화보다 더 아프게 남은 건 그의 표정이었다. 어이없어하는 기색, 그 뒤에 숨은 분노. 그리고 ‘네가 양심이 있으면 나한테 어떻게 그래?’라고 묻는 듯한 그 눈빛.
묻고 싶었다. 내가 핑계를 댄 거라고 했지만, 결국 너도 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느냐고.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느냐고. 내가 너무 솔직했던 탓일까.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해서 매몰차게 떠났어야 했을까.
마음을 정리하려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애처롭게도 하나도 정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머릿속은 더 뒤죽박죽이고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나는 대체 무엇을 원했던 걸까.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지독한 감정은 정말 죄책감일까, 아니면 이조차 학습된 무언가일까.
정말,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