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지로 만들어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오랜만에 글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내 안에 자리 잡은 결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선다.
내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왜, 어쩌다가 감정에 무뎌진 사람이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가 보려 한다.
사실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저 남들보다 감정 표현이 서툰 편이라고만 생각했지, 문제가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연애를 거치며 깨달았다. 내 안의 감정 회로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그때의 나는 잘 울고 잘 웃는, 감정이 풍부한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드러내면 집안 분위기는 서늘해졌고, 나의 말과 행동은 부정당하기 일쑤였다. 부모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는 울음을 참았고, 이유도 모른 채 웃었으며,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척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털털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겐 모범적인 모습으로. 가족들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차피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텐데 내 감정이 뭐가 중요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히자, 내 삶은 내 삶이 아닌,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을 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학습했다. 덕분에 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관계가 깊어지거나 갈등이 생길 때면 여지없이 밑천이 드러나곤 한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는 말은 이제 나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시간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감정을 잃어버린 채 자라버렸지만, 나는 이제라도 다시 느끼고 싶다. 예전처럼 마음껏 울고 웃던 그 아이의 손을 다시 잡기 위해,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 기록을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