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감정이 없는 아이

by 윤슬

이 이야기는 나의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낸 나의 문제, 혹은 내가 가진 깊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 어디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가장 최근부터 이야기부터 꺼낼지, 과거부터 꺼낼지 한참을 고민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혼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비혼주의자다. 연애는 가끔 했지만, 현재는 연애 또한 시작하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왜 타인과 깊게 얽히는 것을 이토록 어려워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가 보려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을 크게 받아오며 살지 못했다. 부모님은 나한테 사랑을 많이 주었다고 말씀하시지만, 글쎄. 내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어릴 때부터 눈치를 보고 차별받으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내 경험이 과장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랑받지 못한 나는 애정에 늘 공허함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아왔다. 우리 부모님은 사는 것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친언니한테 부모의 역할을, 나에게는 동생에게 모범이 되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기를 강요했다. 그렇게 우리가 성인이 된 우리는, 아니 언니는 지금도 책임감이 매우 강하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K-장녀가 되었고, 나는 어른이란 무엇인지 모른 채로 그냥 어른스러운 척하는 그런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언니는 가족들과 친척들의 애정을 받고 자라 감정적 교류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기에,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고 감정을 주고받는 법을 모르는 상태로 컸다. 타고나길 감정 없이 애정결핍이 있는 상태로 나와서 그런지 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감정을 학습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도 몰랐기에. 하지만 애정을 받고 싶다는 강한 열망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흡사 관계중독인 사람처럼.

연애도 많이 해봤다. 다들 나보고 쓰레기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상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기색이 보이면 고백을 유도했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채 온기를 갖기도 전에 이별로 끝났다. 나는 타인의 진심을 한없이 가볍고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다뤘다. 나의 텅 빈 내면을 타인의 애정으로라도 채워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갈증이 너무 심해 타인의 진심을 가벼이 여겼던 나는, 누군가에게는 절대적 가해자라는 존재였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 년일까. 나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적이 있다. 20살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해준 그 사람 덕분에 나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애정을 받으며 크지 못한 탓일까? 감정이 없던 탓일까? 나는 늘 그 사람한테 상처만 줬다. 그 사람은 나한테 늘 감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입력값을 주면 그대로 출력하는 로봇 같다고 했다. 우리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는 내가 믿고 보여줬던 속마음과 가정사를 무기로 사용하며, 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점점 싸우는 일이 많아지고, 나는, 아니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망가져 갔다. 원래도 망가져 있던 나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은 정말 보기가 어려웠다. 그 사람은 내 과거사를 알기에, 늘 나한테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는 그냥 니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건데 니 가정사를 핑계로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것 같아.”, “제발 니 가정사를 무기로 그렇게 쓰지마.”, “왜? 또 너의 그 가정사 때문이야?”, “너는 그렇게 믿는 것 같지만 나는 너의 가정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만큼 널 이렇게 이해하고 보듬어주면서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어. 내가 널 가장 잘 이해하고 만나고 있어.”

헤어진 지금은 저 말들이 전부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것을 알지만,그 당시에는 나 같은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해 줄 사람은 그때 그 사람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의 싸움과 헤어짐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만나기 전에 그는 이렇지 않았기에, 결국 나 때문에 이렇게 변했다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다. 또한 그 사람은 늘 나한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망가졌어.라고 하기에. 정말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나는 또 다시 안 좋은 예전 버릇이 나왔다. 누군가 나한테 호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또 다시 그 애가 나를 좋아해서 내가 고백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내가 좋아하던 사람한테서 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는 소리까지 들었기에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그냥 ‘내가 좋아했던 사람한테도 결국 큰 상처를 줬고, 내가 자신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다는데 감정 따위 존재하지 않는데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그 사람한테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을 보니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다. 그는 나한테 “나 우울증이래. 너 알고 있었어? 그래도 너 만난 거 후회 안 해. 나 말고 누가 상처 받을 거 다 받아 가면서 널 만나겠어. 그래도 진심으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주면 안되는거야?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그렇게 해주면 안돼? 알잖아. 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 믿고 기다리고 상처받고. 나 버렸잖아. 나 이렇게 망가졌잖아. 그러니까 한번 얼굴 보고 미안하다고 해줘.”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걸 읽는 순간 내가 이 아이한테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결국 나 때문에, 전 연인도 망가져 버렸는데, 이 아이도 망가지면 어떡하지? 나랑 만나는 모두가 불행해지면 어떡해? 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결론적으로 그 사람의 문자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고, 그 아이와도 잘 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연애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사실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확신이었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생각을 고치고, 내 행동거지도 바꾼다면 그때는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내용이 내가 연애하기가 두려운 이유이며,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낸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과거와 위에 설명했던 직전 연애에서 받은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더욱 확고한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에 어떠한 일을 경험했기에 비혼주의자가 된 걸까? 이제 써내러 갈 예정이다. 그 전에 먼저 한번 경고한다. 이 과거 이야기는 좀 많이 어두운 이야기이며,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PTSD가 올 수도 있다. 또한 읽는 것이 괴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걸 쓰는 나 자신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지만, 그럼에도 한번 시작해보겠다.

우리 집은 흔히 말하는 철없는 아빠와 일을 열심히 하는 엄마. 사고치는 아빠와 그걸 해결하는 엄마가 당연한 집이었다. 당연히 어릴 때 아빠와 관련된 기억은 없다. 내 기억에서 아빠는 늘 돈 사고를 치고, 친구들과 술 마시러 나갔으며, 집에 들어와도 만취한 상태로 들어와서 잠만 잤다. 또한 어릴 때는 엄마를 폭행하는 가정폭력범이었다. 늘 욕을 하고, 집 가구가 부셔지고, 접시가 깨지고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집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엄마가 약물을 먹고 자살 시도까지 했었기에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조금 커서는 중학생이 됐을 시기에 아빠가 바람을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도 엄마를 통해서. 그때부터 우리 집은 더한 지옥이었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 중학교, 이제는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가 무섭다기보단 지겨워진 시기이다. 하지만 4살이나 어린 아직 초등학생인 내 동생은 무서워했기에 동생을 챙겼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싸움을 말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바람 피는 것을 알게 된 엄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죽으려고 시도까지 했던 엄마가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닌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내가 중3이 됐을 때 아빠가 바람 피는 것을 또 걸려 상이 날아가고,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와 아빠는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심한 말을 하며, 치고 박고 싸웠다. 나와 언니는 무서워하며 울고 있는 동생한테 방에서 이어폰으로 노래 크게 틀고 밖에 보지 말라고 한 후, 엄마와 아빠를 말렸다. 그러나 이때는 나도 좀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엄마가 아빠를 죽일 거라며, 칼을 꺼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 상황은 지금도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어떻게든 엄마가 아빠를 모욕하면서 자극하는 말을 아빠가 못 듣게 하기 위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아빠는 나보고 “닥치라고 너부터 죽여버리기 전에 닥쳐”라고 했다.

이러한 싸움과 화해, 서로 헐뜯기, 바람 들을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보고 자랐기 때문일까? 결혼해도 행복한 집은 존재하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이고 결국에는 다들 싸우고 이혼하고 그러지 않을까? 무한하지 않는 것이 사람인데 어떻게 무한하게 사랑하며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라는 생각과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은 집에서 강점도 없고 망가진 사람인 내가 결혼하면 그건 그거대로 상대방한테 민폐라는 생각에 비혼주의자가 됐다.

뭐.. 비혼주의자가 된 이야기는 사실 이게 다다. 너무 급작스럽게 끝낸 느낌이 많지만, 이걸 쓰면서 그때 당시의 기억을 꺼내면서 써야되는지라 솔직히 좀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급작스럽게 끝내버렸지만 이것이 내가 현재 비혼주의인 이유와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두려운 이유이다. 결국은 과거가 큰 영향을 가지게 되면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쳐버린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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