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주는
엄마와의 통화에서 나는 생각 없이 사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너는 네 아빠처럼 생각없이 그렇게 살고 싶니?”라고 말했고 그 말의 뜻은 내가 지금 아빠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눈물이 났다. 내가 지금 저런 취급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화가 난 목소리로 차분하게 “내가 생각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장난이었잖아. 근데 그걸 그렇게까지 말해야 돼?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잖아. 그런 장난 자체가 싫으니까 다음부터는 하지 말라고 좋게 말하면 되잖아.” 라고 말하니 엄마가 하는 말들은 충격적이었다. 다시는 이런 장난 못하게 세게 말해야 한다는 엄마.
화를 낸 내 잘못이라는 듯, “네가 엄마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생각했으면 그런 장난 못 쳐.”라고 말을 하면서, 화를 내던 것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엄마의 그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 엄마가 맞고 내가 예민하고 틀리다는 것을, 나한테 죄책감을 들게 하기 위해서 늘 하는 방식으로 흐르게 하고 있던 거였다. 원래였으면, 미안하다 하고 사과하고 엄마의 기분을 맞춰줬겠지만, 이번에는 엄마 몰래 조용히 눈물만 흘리면서 아무 말도 안 하자, 엄마도 기분이 상한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전화로 계속 이야기를 꺼내고 있을 때 나는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툭 치면 나올 것 같은 그 말들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근데 그러다 보니 내 몸이 많이 망가졌나 보다. 계속 이 상태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아서 편지 형식으로 감정을 담아내보려고 한다.
엄마 그거 알아? 나는 엄마가 나한테 늘 상처 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거에 몇 배는 더 큰 상처를 주는 말을 생각한다는 걸. 근데 이 말들이 정말 내가 눈 딱 감으면 바로 나올 정도로 차올라있는데, 내가 안하는 이유는 엄마가 불쌍해서야. 남자 잘 못 만나서 이렇게 살고있는 엄마가 불쌍해서. 뭐 남들이 보면 나보고 천하의 불효막심한 년, 싸가지 없는 년, 정신 나간 년이라고 욕하겠지. 근데 그게 뭐? 결국에는 그런 생각으로 내가 엄마한테 상처 안 주잖아. 그럼 된거 아냐?
나는 오늘 엄마 덕분에 다 토해내고 지금 온몸이 덜덜 떨리는데. 내가 다 감수하고 있잖아. 그럼 동정해도 되는 거잖아. 그치? 나는 엄마가 정말 싫어. 아빠도 싫지만, 엄마도 싫어. 오늘은 엄마가 나한테 말실수한게 맞으면서 어떻게든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 싶어서 또 나한테 강압적으로 이야기했잖아. 다른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결국은 내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하려고 했잖아. 그냥 엄마는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뿐이야.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비위 맞추고 사과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한테. 엄마가 받은 스트레스를 우리한테 푸는 거라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듣고만 있었어. 근데 내가 계속 화가 난 상태니까, 결국 엄마도 감정이 상해서 그냥 끊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는 엄마가 날 투명 인간 취급하는게 얼마나 갈까? 언니한테 전화는 언제 올까?
엄마 마음대로 안되니까 하는 방식들 정말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아니 환멸나. 그거 알아?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대. 근데 외적인게 아닌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모 같은 사람인거야. 그래서 그런가? 내 전 연애는 가스라이팅과 집착, 통제 당하는 연애였어. 나는 내 전 남자친구를 탓하고 싶지 않아. 실제 연애에서 내가 못 해준 부분들도 많았고, 그냥 안 맞았던 것뿐이니까. 내가 짜증이 나는건 날 본인이 원하는 인형처럼 만들어 놓는데 그게 익숙하단 거야. 심지어 그 인형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화를 내면서 내 탓을 하면 나 또한 내탓을 하면서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거야. 정말 웃기지 않아? 저딴 취급을 받는 게 익숙하다니? 다 엄마 아빠 덕분이야. 엄마 아빠 덕분에 나는 애초에 정신병자인 채로 대학교에 들어왔고, 원래도 낮았던 자존감이 엄마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면서 더 심해졌어. 근데 이미 20년간 수 없이 당해왔어서 그런가? 그래서 익숙하더라고. 자존감은 낮아지긴 했지만. 그래서 고마워. 내가 이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게 만들어줘서. 엄마 아빠가 내 취급을 이렇게 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러니까 나보고 결혼하란 소린 하지마. 엄마처럼 살기 싫거든. 아빠같은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것도 싫고. 결혼하는 걸 보고 싶고 연애도 좀 하라고 하면 엄마 아빠부터 고쳐. 난 엄마 아빠보고 결혼 생각이 사라졌으니까. 괜히 내 우울 때문에 상대방이 힘들 필요 없잖아? 내가 연을 끊지 못하니까 엄마 아빠랑도 엮일테고. 그런 거 미안해서 어떻게 같이 살자고 할까? 노후 준비도 안 되어있으면서.
내가 엄마한테 직접 상처 주는 말 못하니까 그냥 여기다가 주절주절 써봤어. 더 심한 말들도 있지만 엄마한테는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아.
어때? 내 편지가.
음.. 사실 편지 형식이지만, 절대 내보이질 않을 편지이다. 또 무슨 욕을 들으려고. 저걸 보낼 생각은 없다. 어디다가 이야기하고 싶지만 할 곳이 없어 이렇게라도 기록하는 것이다. 그냥 나도 한풀이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