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이었으면 같이 일 못해!

부부라서 참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라

by 이다코치

나는 오랫동안(20년 넘게) 기획자로 일을 했다. 남편은 개발자로 오랜 시간 일을 한 사람이다.

둘 다 IT업계에서 일을 시작해 쭉 먹고 살아오다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경력으로 치면 내가 좀 더 오래되었다. 그러다보니 일을 함께 하다보면 남편에게 경험치로 내 주장을 밀어붙일 때가 있다. 영업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식에서 그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은 큰 트러블없이 지나갈 때가 많다. 내가 항상 맞아서가 아니라 방식이 달라도 결과가 크게 잘못될 것이라고 보여지지 않으면 좀 더 확신이 있는 사람 의견을 따른다.


# 아니, 이 내용이 그 내용이 아니잖아!!

문제는 소소한 업무에서 발생한다. 둘이 같이 문서작업을 하는 상황이 생기면 여지없이 싸움이 벌어진다.

"힘들게 모양 내느라 시간 들이지말고 내용만 정리해서 줘"

개발자 출신이 남편이 나보다 문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탓에 항상 남편은 나에게 저렇게 말한다. 그러면 게으름을 피우던 나는 완성도있는 문서 장표를 만들어서 주겠다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정말 내용만 텍스트로 정리해서 넘길 때가 종종 있다. 남편이라 욕먹을 걱정 안하고 최소한만 작업을 해서 줘도 된다는 것이 행복하다. 문제는 이 행복감은 딱 여기까지라는 게 문제다.


남편은 약속된 일정보다 먼저 작업을 마치고 나에게 내용을 공유하는 법이 없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오면 남편에게 잠귀 어두운 직장인이 맞춰놓은 알람처럼 몇 시간마다 한 번씩 일이 되었는지 확인하곤 한다. 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 즈음 남편이 작업한 문서를 공유해준다. 여지없이 내 입에서는 항상 비슷한 멘트가 나간다.

"아니, 이 내용이 왜 이렇게 정리가 돼?? 내가 어떤 맥락이어야 하는지 다 적어놨잖아!"


# 일부러 늦게 주는거지?

이제 전쟁 시작이다. 내가 작업한 리소스를 가지고 잠 못자고 머리터지게 고민해서 내용을 재정리한 남편은 억울하다. 나는 나대로 내 의도가 제대로 담기지 않은 방식의 도식화와 문장이 거슬린다. 욱하는 내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몇 마디 낸다.


하지만 결국 남편이 정리한 내용에서 더 손대지 못한채 일단락된다. 수정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수정 할 시간이 없는 탓이다. 남편이 시간을 다 써버린 탓이다. 수차례 이런 상황이 발생하니 불현듯 이 사람이 일부러 이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약이 오르기도 한다. 차라리 해준다고나 하지 말지!!


문서로 작업해야 하는 내용은 거의 기획이나 전략이 많다보니 내가 방향을 잡고 정리할 때가 많다. 남편이 생각한 내용을 함께 담기도 하지만 대부분 내가 생각한 논리와 컨셉으로 정리를 하곤 한다. 그래야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구조에 맞게 풀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내 머릿속에 그려놓은 전체 구도가 틀어지는 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 몰라! 나머지 자기가 알아서 하던가!"

일단 씩씩거리며 1차 일정에 넘겨야 하는 자료는 고객사로 넘기고 본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우!! 부하직원으로 만났으면 진짜 같이 일 못해!"

남편도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 진짜 그냥 직원이었으면 같이 일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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