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같은 엄마와 손절하다.
나는 어릴 적 친구 같은 엄마를 두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주변을 살펴봐도 나만큼 엄마와 친한 딸은 없었다. 엄마에게는 뭐든지 말할 수 있었고, 학교가 끝난 뒤 엄마를 만나면 따발총처럼 오늘 하루 있었던 모든 일들을 얘기하곤 했다. 엄마와 팔짱 끼고 사우나나 시장에 가는 게 제일 좋았다. 동네사람들은 이렇게 엄마와 같이 다니는 딸이 없다며 나를 칭찬하고 엄마를 부러워했다.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엄마고, 엄마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나였다. 바꾸어 말하면 나에게는 엄마 말고 친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모든 걸 말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결국 내 문제라는 결론으로 끝나곤 했기 때문이다. "그건 네가 잘못한거네." 아마도 엄마는 T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마음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화가 나, '다신 엄마한테 말 안 해!' 하고 결심하고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는 결국 엄마에게 또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내게 친구는 엄마뿐이었기에. 엄마가 또다시 날 비난할 거라는 걸 알아도, 마음이 불편해질 것임을 알아도, 그 때 내 마음을 얘기할 사람이 엄마뿐이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엄마의 어려움이나 힘듦도 곧잘 나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건 친구 같은 모녀에게 필수불가결인 특징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도 그랬을까? 나는 엄마의 모든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게 엄마의 에피소드는 분하거나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감정들을 담고 있었기에 그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내가 겪는 일처럼 괴롭고 갑갑했다. 엄마의 어려움을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곤 했다. 그건 나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가진 것 없는 아빠와 결혼해, 갖은 고생을 하며 끊임없이 열심히 일했고, 첫째 아이를 낳고서 그 갓난아기를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나가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둘째를 낳을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생겨버렸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예정일이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았고, 초조한 마음에 갔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의사 선생님이 쑥 휘져었더니 내가 태어났다고 했다. 나는 후에, 대학원에서 무의식에 대해서 배울 때, 혹시 뱃속에서 나는 엄마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예정일이 지나고서도 나오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 그런 나를 반강제로 세상에 끌어다 놓은 걸까 하고.
어려운 사정에 부모님은 자주 다퉜고, 아빠는 매일 소주를 두병씩 세병씩 마셨다. 나는 국민학생일 적부터 아빠 소주를 사러 슈퍼에 심부름 가곤 했다. 아빠가 취하면 휘청거리며 컵이나 병을 깨거나 음식을 엎거나 했고, 어김없이 엄마는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매일 저녁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왜 인지 나는 아무일도 없는 듯 최대한 무던하게 넘기려 했다. 반대로 오빠는 그런 소란이 일어날 성 싶으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서툴렀던 선택 탓인지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멀쩡히 앉아있는 나에게 아빠에게 미쳐 쏟아내지 못한 남은 분노를 쏟아냈다.
아빠가 방에 들어가버리며 부부싸움이 끊어지 듯 끝나면 엄마는 짜증스러운 한숨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 끝에 날카로운 눈빛을 나로 향했다. 그리고 쏟아내는 말은 늘 비슷했다. "너도 아빠랑 똑같다", "너도 필요없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매일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을 했던 아빠와 내가 똑같다고, 나가버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엄마의 분노가 나를 향하면, 나는 나 자신도 미워했다. 나에게 분노했다.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건지, 더 잘할 순 없었던 건지. 그 분노는 가끔씩 내 뺨을 때리고, 내 목 조르고, 그렇게 쓸모없을 거면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외쳤다.
엄마의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쌓아두고 "필요 없다"는 말이 심장에 꽂힌 나는, 늘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서툰 솜씨로 집안일을 하고, 엄마의 분노에 함께 했다. 엄마가 미워하는 것은 나도 미워했고, 엄마가 화를 내는 것에는 나도 화가 났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어갔다.
사람은 둘을 하나로 치면 안 된다. 친구는 친구로서 존재해도 해가 지면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지만 친구 같은 엄마는 해가 져도 돌아가지 않는다. 친구는 가끔 서로 의지할 수 있지만 해결을 바라진 않는다. 친구 같은 엄마는 가끔 의지하려 하지만 딸에게 '가끔'은 '온' 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엄마는 친구 같으면 안 된다.
오늘도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과거라면 한 마디 한 마디 괴로웠을 그 이야기들을 이제는 배경음악처럼 흘려보낸다. 최대한 무던하게 반응하려 애쓴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손절이었다. 이런 나의 손절을 엄마는 "너무한다"라고 말한다. 나도 가끔은 내가 너무한 것 같다. 하지만 너무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져 버린다. 부모님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 속에서 그냥 이렇게 잠들어서 이대로 영원히 잠들기를 바란다. 난 거의 30년을 그렇게 나 자신을 미워했다.
이건 상담실에서도 정신과에서도 해결하지 못한다.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 내가 앞으로 삶을 잘 살아보고 싶다는 긍정적인 감정과 의욕은, 미안하지만 엄마가 곁에 없을 때만 존재한다. 아마 엄마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이건 엄마에게도 해당한다. 내가 없어야만 엄마가 스스로 삶을 이겨 낼 수 있다. 아니, 되려 엄마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나의 존재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 그걸 엄마도 알았으면 좋겠다.
많은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기 어려워한다. 그건 분명 사랑하는 마음이지만 말로 꺼내기 낯간지러워 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이다. 사랑해야 하는 관계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이라는 건 뭘까. 나는 글을 통해 엄마와 손절하려는 것이 아니다. '친구 같은 엄마'와 손절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온전히 엄마를 사랑하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