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아기였다

그리고 나는 늘 원하던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by 이담

언젠가 광화문에 갔는데, 이순신 동상뒤로 이어진 광화문역 출구 앞에 긴 대형 미디어월이 있었다. 나는 열 살 아들과 함께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구에 갔다가 발견했는데, 처음엔 기괴한 느낌의 가면들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나를 멈췄다. 그 영상은 정혜정 작가의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라는 작품이었다. 아이, 아이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가 연달아 작품의 제목같이 자신의 엄마에게 질문을 하는데, 아이와의 첫 만남이 얼마나 감격적이었고 따듯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마도 일곱 살 전후일 어린아이와 서른 살 전후일 젊은 여자, 오육십 대일 어머니, 칠팔십 대일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저 어머니의 출산도 감격과 감동이었음을 확인했을 때,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랑의 말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나 어릴 땐 어땠어?"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먹고살기 바빠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시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 지를 덧붙여 말했다.
나는 어릴 적, 초등학교까지의 대부분의 기억이 없다. 취학 전에 세네 장면, 초등학교 시절 대여섯 장면 정도. 누군가 아무렇게나 잘라놓은 필름처럼 단편적인 장면만이 떠오른다. 그전에,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보면 엄마는 내가 얼마나 유난스러운 아기였는지, 얼마나 뻔뻔하고 발칙한 말과 행동을 했는지, 정도는 기억하지만 어떤 게 예뻤고 어떤 게 좋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살기 바빠서 그랬단다. 나도 안다. 엄마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는지, 평생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들은 아이를 낳고 보면 부모님이 달리 보이거나, 감사한 마음이 커진다고들 하던데, 내가 아기를 낳고 나서는 엄마의 이 말이 더 서글프게 느껴졌다. 평생의 효도를 다한다는 이 시기,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내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이 시기가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예쁜 딸'로서의 사형선고 같이 느껴졌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지만 반대로 그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을 나도 안쓰러웠다.



2021년 12월 4일의 일기


둘째가 태어나고 4개월이 되었다. 조산기로 3주라는 시간 동안 입원하며 조산방지주사를 맞고도 한 달이나 일찍 태어나 이제 겨우 어르는 말에 방긋 웃는다. 첫째 때문에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일하러 다니며 데리고 다니고 하다 보니 제대로 손이 탄 건지 혼자 누워있질 않는다. 첫째가 태어나고 돌 쯤부터 나는 둘째를 갖고 싶었다. 첫째가 너무 순하고 예쁘기도 했고 또 아들도 좋지만 나를 닮지 않은 예쁜 딸을 키우고 싶기도 했다. 첫째가 만 20개월이 지나서 쯤 되었을 때부터 둘째 가질 준비를 했다. 엽산도 먹고 비타민도 먹고 나름 노력했더니 첫째 아이 25개월 때쯤 임신이 되었다. 아이는 3살쯤 되었을 때가 그나마 둘째가 태어나도 안 좋은 영향이 덜하다고 해서 만 3세를 기다렸는데 마침 비슷하게 맞춰 태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주 기뻤다.
예상 주수 5주쯤 테스터기로 확인을 했지만 어차피 병원에 가도 바로 아기집을 볼순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다독이며 일주일을 기다려 병원에 갔다. 하지만 아기집은 볼 수 없었다. 자궁에 피가 가득 차서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의 절대 안정하라는 얘기를 듣고 다시 돌아왔다. 마침 첫째 아이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말이 늦게 트인다며 등하원마다 나에게 한소리씩을 던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참이었다.


'집에서 놀아주세요?', '뭐 하고 놀아주세요?', '아이랑 좀 많이 놀아주세요.', '책은 읽어주세요?'

일찍이 복직해서 일하며 갓 두세 살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 마음에 썩 내키는 일은 분명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고, 아이와 둘이 있으며 지쳐서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째 아이는 직장인과 똑같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어린이집에서 생활해야 했다. 나에겐 하원하고 급하게 저녁준비를 하고 저녁을 먹이고 정리하고 씻기고 재우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내가 아기를 위해서 해주는 것은 매일 저녁 자기 전에 아기가 욕심껏 고른 열 권의 동화책을 읽어주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아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아침저녁으로 반복되는 타박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겨우 적응한 어린이집을 내 불편으로 바꿔버리는 것도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한 달가량 매주 초음파를 확인하고 피검사를 하며 병원에 가도 아기집은 볼 수 없었다. 초음파영상 속 자궁에는 아기집 대신 피웅덩이 같은 동그라미들만 가득했다. 혹시라도 자궁 외 임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산방지주사도 맞을 수 없다고 했다. 어쨌든 두 번에 걸친 피검사 결과, 수치상 임신이 맞으니 다음 주에 다시 보자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다음날, 갑작스러운 복통과 하혈로 두 번째 임신이 끝났다. 아기집도, 심장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나는 나를 많이 자책했다. 까짓 타박하는 말들, 그냥 흘려 넘길 걸, 왜 그렇게 예민하게 불편해했을까. 그냥 흘려 넘겼다면. 다른 어린이집에 보냈다면, 아니 내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후회는 나에게서 주변사람으로, 환경으로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꼬박 1년 넘게 더 기다리다가 첫째가 48개월을 넘겼을 때 지금의 둘째가 태어났다. 너무나 원했던 내 아이. 너는, 너만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엄마가 사랑하는 딸로, 엄마가 간절히 원했던 아이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어느샌가 어릴 적부터 아이가 갖고 싶었다. 어느 정도냐면 결혼은 안 해도 아기를 낳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아이를 좋아하기도 했고, 아이들의 햇살 같은 미소나 포동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가득 안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어린이집 실습을 갔을 때, 나는 태어나 가장 사랑스러울 5살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들을 잔뜩 보고 실컷 안아줄 수 있으니 행복한 한 달이었을 만도 한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장난치고,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지쳤다. 그러다 어느 날은 다 같이 이동하다가 교실로 돌아오던 순간이었는데, 와다다 달려오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양팔을 벌리고 앉았다. 아이들은 무심히 나를 지나쳐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무룩해져 팔을 내리려는데, 유난히 사랑 가득했던 여자아이가 달려와 나에게 폭 안겼다. 그리고 내가 그 기분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포르르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때 느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건 사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할 존재를 갖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나는 어떤 순간이라도 엄마를 사랑했으니까, 그런 존재가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애타게 아이가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은 엄마로서 아이를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던 아이들을 낳았지만 사랑 속에 가득하진 못했다. 사랑받고 싶다는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잘못된 처방을 내려버린 것이다.

지금 나는 오로지 아이를 위한 엄마로서의 시간이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그 선택이 되려 아이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만약 지금 너무 지치는 엄마들이 있다면,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할 순간이라는 사인이다. 나를 먼저 챙기면 그 뒤에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보인다. 그게 나를 살릴 진짜 사랑이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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