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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온 Sep 12. 2024

책 '수빈이가 되고 싶어' 리뷰

여적여? 여돕여?

* 이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안전가옥은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로 알고 있던 시리즈였다. (조만간 이 작품도 리뷰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표지가 예뻐서 산 책이었는데 시리즈를 보니 안전가옥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쩐지 많이 본 디자인이더라... 싶더라니.


이 책은 질투에 대해 다루고 있다. 15살 아역 배우 두 명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작가의 말인지 프로듀서의 말인지를 보니 배우라는 직업 상 다른 사람이 되는 것에 능숙한 사람들이지만, 아역 배우는 그 나이대 순수함 때문인지 날 것의 무언가를 보여 줄 때가 있어 이렇게 설정했다고 하던데 이 작품에 정말 찰떡같이 어울리는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겨울보다 여름에게 마음이 더 갔는데, 그게 작가가 의도한 건지 내가 그렇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다. 여름의 심리 묘사가 겨울의 것보다 많았다고 기억하는 걸로 봐서 내가 작가의 의도 그대로를 흡수한 것일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고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선망하는 몸을 가진 겨울과 그에 반해 외모적인 부분에서 비교될 순 있어도 연기력 만큼은 어디 하나 뒤처지지 않는 여름. 여자애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 겨울과 남자애들의 친구가 된 여름. 어떻게 보면 정말 다른 선택을 했고, 다른 배경에서 자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이 둘이 나는 결국 친해지길 은근히 바랐던 것 같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많이 등장하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결국 이렇다 말할 통쾌하고 시원한 결말을 선사하지 않아 그 부분이 아쉬웠다. 둘이 다시 친해지는 게 클리셰인 부분도 있지만 난 그게 좋았는데... 고민하다 5점에서 1점을 깎은 이유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뻔한 결말은 좋아하지 않으니 작가의 선택지는 자연스레 현실적인 마무리로 좁혀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주목함과 동시에 여름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계속 본인의 역량을 발전시키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겨울이 여름의 대본을 우연히 보게 되는 사건에서 여름이 써 놓은 메모와 겨울이 써 놓은 메모의 차이를 보여 주는 장면에서 나는 둘의 연기력에 대한 각극이 좁아지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확신했다. '왜'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그 캐릭터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 여름의 노력에서 이미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다 갖추었다고 본다. 이번엔 겨울에 대해 얘기해 볼까. 겨울의 마지막 인터뷰 장면에서 배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묻는 팬의 질문에 겨울은 오기와 독기를 챙기라며 웃는다. 이는 겨울이 그동안 여름과 비교당하며 느꼈을 수모와 부잣집 딸이라는 배경, 그렇지만 집안에서 홀대받는 자식이라는 점에서 수없이 자각했을 본인의 위치 같은 걸 한꺼번에 담아내는 말이었다.


이를 내 삶에 적용하여, 여름의 노력과 끈기, 그리고 겨울의 오기와 독기를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그게 직업적인 면으로 질문이 바뀌면 딱히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길만 생각하고 거기로 갈 거라고 해 놓고 계속해서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보니 한 우물만 파는, 그것도 최선을 다해 그 주변에만 붙어 있는 여름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겨울은 또 어떠한가. 주변 사람들의 비판이나 비난에 자기비하나 자기연민 속으로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버티려고 하는 그 자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15살 아이들에게 무언가 배운다고 생각하면 쑥스럽고 민망하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배울 점이 있으니 이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둘이 결국 완전한 화해는 하지 못한 채 이 작품은 끝이 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중년이 되었을 때, 혹은 더 이르게라도 둘이 서로를 바라 보며 환하게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를 돕는 여자'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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