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온 Oct 18. 2024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리뷰

이토록 아름다운 우정

* 이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뒷북치는 데 뭔가 있는 거 같다. 항상 개봉했을 당시에는 안 보러 갔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유행이 끝날 때즈음 '한 번 찍먹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남들 다 할 땐 안 하고 싶어지는 '홍대병'인가. 아무튼 이 영화도 그래서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봤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진작 볼 걸 하는 마음이 드는 영화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재희 전 남자친구가 찾아와서 '왜 안 만나 줘'를 시전 했을 때 흥수가 바로 달려와 준 장면이었다. 둘의 눈물겨운 우정을 확인한 순간이었달까. 누군가 이 영화를 추천한다고 할 때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뭔지 이해가 갔다. 동시에 난 그런 친구가 있나,에 대한 고민도 되었다. 물론 같이 있으면 좋고 행복한 친구들은 있지만, 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치고받고 싸워도 결국엔 둘 밖에 없는 그런 사이인 친구가 있을까 싶어서. 재희와 흥수의 관계가 그런 면에서 부러웠던 것 같았는데 여자친구에게 이 영화 이야기를 해 주니 내 추구미와 비슷하다고 해서 놀랐다. 내가 그렇게 제멋대로에 생각 없이 사는 사람처럼 보이나,라는 생각을 하다 이내 그만뒀다. 난 영화를 보며 재희를 응원한다고 하면서도 그런 시선으로 재희를 바라보고 있었구나, 나도 이 영화에 나온, 재희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아서. 재희를 이해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재희보다 내가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진짜 철없고 속없는 건 나일 수도 있겠다.


난 걔가 언제까지고 거기 있을 줄 알았는데. 수호가 떠나간 뒤 흥수가 한 말이다. 이 말이 왜 그렇게 공감이 되었을까. (이렇게 쓰면서도 말이 이상하지만) 세미오픈이자 세미벽장인 나는 아웃팅 때문에 '아프지 않게 자살하는 법'까지 검색하던 흥수를 보며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와 반대로 인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결국 인권 단체에서 일하게 되는 수호에게도 깊이 공감되진 않았다. 서로 정말 좋아해도 현실적인 벽 때문에 이별을 할 수도 있구나, 그게 동성끼리라면 커밍아웃과 관련된 문제가 될 수도 있구나, 싶어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흥수가 나 같았다. 난 주변 사람들의 시선보다 네 벽이 더 아파. 수호가 한 말이다. 여자친구가 날 바라볼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을 거 같아서 미안했다. 사실 오늘 공유 앨범에 여자친구가 올린, 나를 찍은 동영상을 보는데 많이 놀랐다.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나?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고 무감각해 보이는, 정색한 표정으로 여자친구를 바라보고 있어서. 여자친구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안 하고 무시하고 있어서. 어쩌면 수호도 흥수를 만나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수호가 새로 만난다던 남자친구는 흥수와 달리 다정한 사람일까. 내 여자친구도 나랑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여자친구에게는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들었다.


남녀의 역할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원나잇 미친놈' 남자와 레즈 여자의 동거였다면. 생각만 해도 파국인 설정이라 자연스레 고개를 젓게 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여성의 지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여자이면서 성소수자인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 걸까.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재희의 결혼 뒤에 재희와 흥수의 우정은 계속될까? 어쩌면 재희는 다른 유부녀처럼 아이를 낳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흥수와는 예전과 같은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둘이 함께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굳건히 쌓인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둘이 1년에 한 번 연락하는 사이가 되어도 여전히 둘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연애담'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