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는 될 줄 알았는데
난 내 인생에서 그저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12년 동안 촬영하여 실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영화 <보이후드>. 제목처럼 클라이맥스 없이도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따뜻하게 담아낸 영화다.
극 중 엄마로 나오는 올리비아는 남편과 이혼한 채 2남매를 홀로 키우는 워킹맘이다. 아들이 대학 갈 나이가 되고 독립할 집으로 가기 위해 집을 꾸리는데 엄마의 이런저런 안부 섞인 질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아들의 반응에 초라해진 엄마는 하소연하듯 "난 내 인생에서 그저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 조사를 한 번쯤은 한다. 누군가는 과학자, 다른 누군가는 대통령, 선생님 등 다소 불분명한 꿈을 적는다. 삶을 살면서 그 꿈은 구체적으로 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나의 초등학생 가정통신문에는 미술 선생님이 적혀있었다. 때로는 그 칸이 화가, 애니메이터로 바뀌기도 했다. 그 꿈이 자발적인 것이든 강요된 것이든 어쨌든 우리는 꿈을 가진 채 우리는 대학도 진학하고 직장도 갖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갖고, 생활에 치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실망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인생에 '무언가' 있고, '무언가' 될 줄 알았는데 그 '무언가'가 없는 삶에 대한 실망 말이다.
왜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장래희망 적는 란이 없을까. 자기소개서에 적는 기업이 바라는 미래에 대한 포부 말고, 가족들이 바라는 모습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꿈 말이다. 성인은 꿈을 스스로 설계하고 개척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성인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내 주위를 보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꿈에 책임감을 갖고 살고 있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았다. 대안을 찾으려 그 꿈은 승진, 내집 마련, 더 좋은 차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를 사도, 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해도, 연봉이 높아져도 잠시의 만족감만을 줄 뿐 인생은 다시 헛헛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퇴근하고는 공부도 하고 주말에는 글도 쓰면서 꾸준히 뭔가를 하긴 하는데 한 방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크게 이룬 것도 없는 것 같고, 미래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 그렇다고 또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지도 않는 자신이 더 싫어지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자기 연민에 빠졌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자신을 과거에 묶어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과거랄 것도 없어서 앞만 보면 됐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바라볼 앞보다 지나간 과거가 더 길어진다. 과거에 그린 나는 미래를 보고, 현재의 나는 과거를 본다. 과거의 내가 그린 미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더 커진다. 자기 연민에 벗어나고 싶다면 과거가 아닌 현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내가 그렸던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 말고, 현재의 나의 모습 말이다. 앞을 봐야 한다고 해서 먼 미래를 그릴 필요도 없다. 미래의 목표를 세운다면 또 다른 자기 연민에 빠지는 순간이 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 수 있을 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