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 Sep 06. 2020

자기 연민

뭔가는 될 줄 알았는데

영화 <보이후드> 中
난 내 인생에서 그저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12년 동안 촬영하여 실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영화 <보이후드>. 제목처럼 클라이맥스 없이도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따뜻하게 담아낸 영화다.

극 중 엄마로 나오는 올리비아는 남편과 이혼한 채 2남매를 홀로 키우는 워킹맘이다. 아들이 대학 갈 나이가 되고 독립할 집으로 가기 위해 집을 꾸리는데 엄마의 이런저런 안부 섞인 질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아들의 반응에 초라해진 엄마는 하소연하듯 "난 내 인생에서 그저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 조사를 한 번쯤은 한다. 누군가는 과학자, 다른 누군가는 대통령, 선생님 등 다소 불분명한 꿈을 적는다. 삶을 살면서 그 꿈은 구체적으로 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나의 초등학생 가정통신문에는 미술 선생님이 적혀있었다. 때로는 그 칸이 화가, 애니메이터로 바뀌기도 했다. 그 꿈이 자발적인 것이든 강요된 것이든 어쨌든 우리는 꿈을 가진 채 우리는 대학도 진학하고 직장도 갖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갖고, 생활에 치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실망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인생에 '무언가' 있고, '무언가' 될 줄 알았는데 그 '무언가'가 없는 삶에 대한 실망 말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장래희망 적는 란이 없을까. 자기소개서에 적는 기업이 바라는 미래에 대한 포부 말고, 가족들이 바라는 모습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말이다. 성인은 꿈을 스스로 설계하고 개척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성인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주위를 보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꿈에 책임감을 갖고 살고 있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대안을 찾으려  꿈은 승진, 내집 마련,  좋은 차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를 사도,   좋은 집으로 이사해도, 연봉이 높아져도 잠시의 만족감만을   인생은 다시 헛헛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좋은 ,  좋은 직장,  좋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퇴근하고는 공부도 하고 주말에는 글도 쓰면서 꾸준히 뭔가를 하긴 하는데  방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크게 이룬 것도 없는  같고, 미래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같다는 불안감. 그렇다고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지도 않는 자신이  싫어지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자기 연민에 빠졌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자신을 과거에 묶어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과거랄 것도 없어서 앞만 보면 됐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바라볼 앞보다 지나간 과거가 더 길어진다. 과거에 그린 나는 미래를 보고, 현재의 나는 과거를 본다. 과거의 내가 그린 미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더 커진다. 자기 연민에 벗어나고 싶다면 과거가 아닌 현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내가 그렸던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 말고, 현재의 나의 모습 말이다. 앞을 봐야 한다고 해서 먼 미래를 그릴 필요도 없다. 미래의 목표를 세운다면 또 다른 자기 연민에 빠지는 순간이 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 수 있을 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