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히 부서진다는 것.

by 류대표

나는 사실 이제까지 살며,

크게 부서진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고,

일도 가정도 어느 정도 잘 꾸려왔고,

별다른 위기도 없이 '버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가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이야기하면

어쩐지 나와는 조금 먼 얘기 같았다.

그런데 나는 관계 속에서 부서졌다.

그건 겉으로 보기엔 조용한 무너짐이었다.

큰 사건도 아니었고,

무언가 하나가 터져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다는 감각.

말을 해도, 변명을 해도, 다 무의미해지는 그 느낌.

그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됐다.

'괜찮은 사람', '쓸모 있는 사람', '이 정도면 되는 인간'

그 모든 생각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멈춰 서서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역할'에 의존해 살아왔는지를 봤다.

사람들의 인정을 얼마나 갈구했는지,

내가 정답이라 믿는 가치들이

얼마나 나를 좁고 단단한 틀에 가두었는지를 알게 됐다.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 마음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도 완전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날은 관계속에 말 한마디에 여전히 흔들리고,

때로는 예전처럼 붙잡고 싶어하는 날들이 있다.

확신 있게 살던 그때가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흔들리고, 무너지고, 두렵고, 외롭고, 텅 빈 느낌이 휘몰아쳐도,

그 빈자리에 비로소 진짜 내가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래도 이전처럼 꽉 붙잡고 있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