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11.

유난스러운 동생 사랑(1)

by Ellen Yang




나에게는 네 살 터울 여동생이 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외동딸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주변에 언니오빠들이 차고 넘쳤기 때문에 외동들에게 흔히 있다는 “언니 만들어 줘, 오빠 만들어 줘!”라는 부모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요구로 떼를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언제나 막내였던 나는, 부모님께 좀 더 현실성 있는 소원이었던 '동생'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 바람은 다섯 살의 가을에 현실로 다가왔다.




네 살도 절반을 지날 무렵이었을 거다. 엄마의 배가 하루가 다르게 볼록 올라오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그 안에 내가 그토록 기다리는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엄마 배에 귀를 대고 내 동생으로 태어날 아가의 소리를 듣는 건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설레는 일이었다.


만삭이 될 때까지도 엄마는 고모할머니의 한복점에 출퇴근을 하셔야 했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몸이 무거워진 엄마와 항상 동행하며 이들의 보호자의 역할에 꽤나 진지하게 임했다. 아무래도 이때부터 동생을 향한 나의 유난스러운 사랑이 시작되었던 듯하다.




엄마는 나도, 내 동생도 제왕절개로 낳아주셨는데, (아직도 엄마의 배에는 이 흉터가 선연하다.) 개복을 하고 아이를 꺼냈어야 했던 제왕절개는 당연히 자연분만보다 회복의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엄마가 퇴원을 하시기 전까지는 근처에 살았던 이모들이 나를 돌봐주었고 종종 아빠와 이모를 따라 문병을 다니며 그리움을 꾹꾹 눌렀더랬다. 그리움 밑에 우리 가족이 진정한 네 식구가 될 시간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면서 말이다.


드디어 엄마와 동생이 집으로 왔다.

아기보에 쌓인 채 얼굴만 빼꼼하게 내밀고 있던, 나와 함께 '자매'라는 이름으로 엮일 동생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게 된다. 말도 안 되게 자그마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를 본 적 없는 다섯 살 어린이는 이 광경이 신기하고 놀랍고 '안녕, 아가야'를 속삭이고 또 속삭이며 '언니'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언니로 다시 태어난 나의 동생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얼마만큼이었는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보겠다.


Episode 1.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나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동생과 붙어있었는데, 작고 소중한 그 어린 동생과 시종일관 같이 있으며 모든 걸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이 마음은 동생이 먹을 분유를 나도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동생 먹기 좋게 식으라고 잠시 세워둔 젖병을 들고는 몇 번 홀짝였는데... 동생 밥에 손을 대서 벌을 받았나 싶게 갑자기 동생 앞에서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당혹스러움으로 눈물도 찔끔거렸음은 물론이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난 태생이 분유를 먹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엄마의 모유만을 먹고 자랐던 것이다. 사실 분유를 못 먹고 토해내던 건 동생도 마찬가지여서 곧 우리 집에는 분유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Episode 2.

어느 겨울날, 동생의 엉덩이에 발라주던 베이비파우더를 보고 순간 영감이 떠올랐다.

당시 어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봤던 '강시'라는 캐릭터에 제대로 꽂혀있던 나는 '강시'로의 분장을 시도했다. 이 분장을 하고 동생 앞에 짠하고 나타나면 그 예쁘고 귀여운 웃음을 나에게 발사해주지 않을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잔뜩 부푼 기대감으로 엄마의 화장대에 서서는 온 얼굴을 베이비파우더로 허옇게 칠을 했던 나.

곧이어 방으로 들어왔다가 큰딸의 모습을 본 엄마의 말잇못 모먼트. 온사방에 흩어져있던 파우더를 바라보며 엄마의 그러데이션 분노가 올라왔겠지. 내 딴에는 좋은 의도였으나, 엄마에게는 괘씸한 의도였던 그 일로 흠씬 혼이 났던 나는 눈물을 홀짝이며 화장실에 앉아 세수를 했어야 했다.(넌 대체 이게 왜 갓난아기를 웃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Episode 3.

동생이 네다섯 살 정도였던 시절, 나는 학교 친구의 생일잔치(그때는 생일잔치였다. 잔치가 파티로 바뀐 건 한참 뒤의 일이다.)에 초대되었다. 가뜩이나 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일하는 엄마 옆에서 혼자 놀며 심심함을 달래야 했던 동생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언니가 친구를 만나러 또 집밖으로 나간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기도 데려가달라며 떼를 쓰는 동생. 난 결국 데리고 동생을 데리고 생일잔치로 향했다. 그 친구가 사는 곳은 어린이의 보폭으로 걸어서 20분 넘게 걸리던 거리였는데 갈 때는 신이 나서 곧잘 따라오던 동생이 신명 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힘이 들다며 업어달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동생을 위하는 마음이 태산(?)과도 같았던 어린이였다. 동생에게 스읍 방울뱀 소리와 "너어~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제법 어른다운 멘트를 날리고는 자그마한 몸으로 더 자그마한 동생을 읏차 하고 둘러업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집으로 걸어왔다. 이 일화는 한동안 엄마와 아빠에게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동생도 잘 알아주었고 (물론 투닥투닥 다툴 때도 있었지만)

우리 자매에게는 형제자매들 사이에 흔히 일어난다는 '혈전'의 역사는 없었다.

그저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자라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갔다.


TO BE CONTINUE...



2025.08.12.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