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식가족
엄마와 아빠의 30년 지기 보금자리의 안부 확인차, 얼마 전 친정에 잠깐 들렀다.
두 분은 원래 서울과 광주에 각각 계시다가 올해 초에 엄마까지 광주로 내려가시면서 서울집은 잠시 비움상태이다.
엄마가 종종 서울에 올라와서 지내시긴 하지만 비어있는 시간이 더 많은,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이 가득 담긴 그곳이 어디 하나라도 삐걱일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들면 출근길이나 점심시간, 또는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이 친구의 안부를 물으러 들르곤 한다. (난 직장이 친정 근처다. 그래서 이런 번개 방문이 가능함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얼마 전 서울에 대차게 비가 왔었다. 난 부모님의 보금자리에 비가 새지는 않았을까 내심 걱정이 들었다.
못해도 내 나이 또래는 되는 이 친구는,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던 날이면 종종 천정 벽지 안에 물을 양껏 머금고는 배불뚝이가 되었던 화려한 전적이 두어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한 점심거리를 사들고는 친정집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무탈했다.
안도의 마음과 함께 샌드위치와 커피를 식탁에 펼치고 오물거리다가, 문득 식탁 옆 냉장고 사정이 궁금해졌다. 안에 혹시라도 상할만한 음식이 있는지, 또는 주전부리할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픈 마음도 있지만 친정집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건 일종의 반사작용과 같다. 한창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일 때, 냉장고 문이 닳도록 열었다 닸았다 했던 것이 아직도 몸에 버릇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냉장고 안이 너무 썰렁했다.
빈집에 냉장고가 꽉꽉 채워져 있다는 게 더 이상하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 집 냉장고는 문을 열면 쏟아져 내릴 것만큼 맛있는 음식과 풍성한 식자재, 간식들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다.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며 내 마음도 같이 공허해졌다. (가끔 엄마와 아빠가 둘만 사는 짝꿍과 나의 집에 와서 냉장고를 불심검문하면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며 먹을 것도 못 챙겨 먹고 사냐며 안타까워하셨는데, 그때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달까.)
친정에 있는 책장 한편에 놓인 오래된 금박 액자에는 팔다리가 오동통한 소시지 같은 비주얼에 볼살은 왕사탕을 물고 있는 것같이 빵빵해 보이는 아기가 있다. 바로 나다. (내 아기 때 사진을 보면 우량아가 따로 없다.)
부모님 피셜로, 난 태어나서부터 남다른 먹성을 자랑했다고 한다. 모유는 부족했으나 분유는 먹지 못하던 나는 이유식을 빨리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유식의 시작과 함께 우리 집 냉장고는 점점 여유공간이 없어졌다. 내 식탐과 먹성이 가뜩이나 큰손이던 엄마와 아빠를 왕손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집에는 먹거리가 가득이었고 냉장고 안에는 언제나 빈틈없이 촘촘하게 먹거리가 채워져 있었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매끼마다 N첩 반상이 차려졌으며 우리 가족이 훑고 간 식탁에는 잔반도 많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 삼시세끼 식탁을 차려낼 수 있었는지, 엄마의 능력이 새삼 존경스럽다.)
식사를 마치면 다양한 간식거리가 뒤따랐다.
기본적으로 백화점 식품관에서 일하셨던 아빠 덕분에 우리 집에는 언제나 신기하고 맛있는 빵과 주전부리들이 넘쳤다. 거기에 여름이면 브라보콘, 메타콘, 월드콘 등등 아이스크림이 박스채로 냉동실에 쌓여있었고, 냉장실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과일도 언제나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 먹거리들은 우리 네 식구 앞에서 며칠이면 금세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특히 수박을 좋아하던 나로 인해 여름만 되면 아빠는 일주일에 서너 통의 수박을 사다 나르셔야 했다.)
중학교 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다.
친구: "우리 햄버거 먹을까?"
나: "그럼 점심으로는 뭐 먹지?"
친구: "햄버거가 점심 아니야?"
나: "햄버거는 간식 아니야?"
친구: "...."
나: "....??!!!?"
이때까지 난 햄버거는 밥 먹고 먹는 간식인 줄 알았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밥과 빵은 엄연히 식사와 간식으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친구도 나도 황당한 대화였다. 이때 난 깨달았다. 우리 가족이 대식가였음 말이다.
다행히도 먹는 거에 비하면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우리의 대식본성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요즘 유행하는 먹방도 가능했을 것 같은 식사량일 듯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먹성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다.
딸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둘만 집에 남겨두어도 될 시기가 되었을 때, 두 분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셨다.
2박 3일의 짧은 제주여행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신 부모님에게,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우리 자매의 질문 보따리가 펼쳐졌다. 몇몇 관광지에 대해 언급하시던 엄마는 돌연 너무나 우스운 무언가가 생각나셨는지 갑작스러운 함박웃음을 터뜨리셨다.
"둘이서 식당에 갔을 때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몰라. 아침 먹으러 간 식당에서 죽에, 생선구이에, 3가진가 4가지 메뉴를 마구잡이로 시키니까 사장님이 누가 또 오냐는 거야. 둘이 그걸 다 못 먹을 거라 생각하셨나 보더라고. 괜히 민망했다니까!"
이 말에는 민망하셨어도 주문한 음식을 취소하진 않으셨다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당연히 차려진 음식을 남김없이 다 드셨을 거고 말이다. 이 이후부터는 남들 다 가보는 관광지에서 본 게 뭐가 대수냐, 우리 기억엔 먹은 것들만이 남았다는 듯이 엄마와 아빠의 '제주 8끼' 체험 보따리가 펼쳐졌다. 여행의 묘미는 먹는 데에 있다는 걸 몸소 실천하고 오셨던 두 분이었다.
이제는 우리 가족 모두 나이가 들어 소화력도 부쩍 약해지고, 먹는 족족이 살이 찌는 체질로 변했다.
몸의 노화가 예전의 식탐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게 된 지금, 아무거나 먹거나 먹고 싶은 만큼 양껏 먹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 현실이 자못 슬프게 느껴진다.
살이 쪽 빠져버린 친정집 냉장고를 보며 불현듯 떠오른 과거 대식가족의 모습 위로, 웃음과 슬픔의 감정이 입혀졌던 날이다.
2025.08.14.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