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14.

고해성사

by Ellen Yang


우리 친가와 외가, 짝꿍의 가족까지 합치면 난 꽤나 대가족에 속해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수만큼이나 종교도 다양한데, 그래도 그중 성당을 다니는 일가친척이 많은 편이다.


내가 성당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다.

원래 무교였던 (어쩌면 부모님의 영향으로 불교에 마음을 두고 있었을) 엄마와 나는, 동생이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천주교라는 종교를 만나게 되었다. (아빠는 아직도 종교에 한해서는 중립의 입장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신부가 되었으면 하셨을 만큼 독실하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던 큰고모께서는 우리 집이, 자신이 아끼는 셋째 동생네 가족이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진심을 다해서 기뻐하셨다. (내 세례명은 고모께서 지어주신 거다.)




어린 나를 성당으로 이끈 건 믿음이라기 보다기보다는 새로운 환경, 인간관계, 어린이의 흥미를 자아내는 다양한 활동들이었던 것 같다. 초반에는 매 주말마다 친구들과 만나고, 예쁘고 멋진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캠프를 가고 부활절을 준비하고 성탄절을 맞이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맛에 주말이면 빠지지 않고 성당에 발도장을 찍었다. 종교에 대한 믿음보다는 말 그대로 '놀러'를 다녔던 거다. 그래서 주말이면 성당을 가는 게 일종의 낙이 될 수 있었다.


천주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생부터 세례와 첫 영성체를 위한 두어 달 정도의 '인텐스'한 천주교 교육과정(기도문 외우기, 성경 읽고 토론하기, 수녀님의 강의 등이 포함된 과정이었다.)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 과정을 신청하고 이수하게 되면 미사 중에 어른들이나 언니오빠들처럼 예수님의 몸이라는 둥근 빵, 영성체를 모시는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 거다. 난 5학년 여름에 이 과정을 통해 세례를 받고 첫 영성체를 모셨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미사보를 머리에 쓰고 세례와 영성체를 받았을 때, 내면의 키가 한 뼘 더 커지며 성당에 대한 소속감이 전보다 더 커진 것만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과 약간의 전율이 흘렀던 순간이었다.

다만, 어디서든 한층 성장한다는 건, 그만큼의 의무감도 생긴다는 걸 의미한다.

세례를 받고 좋아하던 어린 나에게 약간은 부담스러운 의무가 생겼다. 바로 '고해성사'이다.




어느 성당에나 본당의 뒤편에는 고해소라는 곳이 있다.

무언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잘못이 있었다면 그 주 주말에 고해소를 찾아 미사 전에 신부님께 죄를 고백하고 죗값을 받아 나오고 그 죗값을 클리어해야 미사에 영성체를 모실 수 있었다. (거창한 단어들이지만 '거짓말을 했어요.' 같은 아주 사소한 잘못을 고백하면 신부님께서는 '주기도문을 ○번 외우세요.' 이런 식으로 죗값 주시는 식이다.) 얼핏 반성의 의자나 생각하는 의자와 비슷한 듯 보여도 생각하는 의자는 생각만 하면 그만인 데에 반해 고해소에서는 죄를 직접 내 입으로, 말로 내뱉어내야 한다는 게 크나큰 차이점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린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고해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본당 뒤편에 앉아서 어떤 죄를 고백할지를 머릿속에 정리를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신부님께서 고해소로 들어가시면서 누가 그곳에 들어올 준비를 하는지 알고 보고 들어가실 것만 같았고 왠지 내가 누군지를 아실 것 같아서 부끄럽고 두려웠다.


그리고 안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고해성사를 봐야만 했던 가장 잦은 사유는 '미사 불참'이었다. 미사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는 건 그다음 주에 고해소를 방문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누가 '잡았다, 요놈!'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 미사 중 영성체를 모시는 건 천주교인으로써 양심에 위배되는 일이었으므로 영성체 의식에 함께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고해성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고해소에 들어가서 "지난주에 미사를 못 왔어요."라고만 하기에는 좀 그런 거다. 뭔가 신부님께 더 말씀을 드려야 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러니 이거 말고도 주중에 또 잘못한 게 뭐가 있었을지를 머릿속에서 캐내는 발굴작업도 수반되어야 했다.

그런 사유의 시간을 거친다 해도 겨우 개미 목구멍에서나 나올법한 목소리로 내뱉는 나름의 레퍼토리라고는 "지난주에 미사에 못 왔던 걸 반성합니다. 친구한테 짜증 낸 걸 반성합니다. 친구 험담을 해서 죄송합니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한 걸 반성합니다. 부모님께 짜증내서 죄송합니다..." 이게 다였다.


신부님께서는 매번 주기도문, 성모송 같은 기도문을 N회 속으로 올리라는 정도의 간단한 숙제를 주셨지만, 아무리 칸막이가 있다한들 신부님 바로 옆에서 죄를 직접 읊어대는 그 자체가 부담스럽고 부끄러웠던 거다.



성모승천대축일을 앞두고, 어리고 젊은 시절 고해성사에 깔려있던 부담감과 부끄러움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내 잘못을 언급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성인이 된 지금도 아직도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일임을 깨달았다. 주일학교 교사활동까지 하며 십수 년을 열심히 다녔던 성당에 언젠가부터 발걸음을 더디 하고 휴식기를 가지게 된 이유도, "그동안 미사에 못 나와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이런 죄를 지었음을 용서해 주세요."라는 고해성사 한 번이 어렵고도 부담되서임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거다.


어릴 때나 성인이 된 지금이나 내 잘못을 누군가에게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말할 깜냥이 되지 못하다는 건, 결국 아직 나의 내면이 더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반증인 거겠지.



2025.08.15.

Elle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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