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15.

엄마의 병가(1)

by Ellen Yang


작년 여름, 엄마의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원래도 엄마는 여름이 되기 전이면 배앓이를 한 번씩 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뭔가 음식이 들어가면 위장이 소화를 거부하는 듯, 먹으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고는 했다. 그리고 점점 그 좋아하던 '음식을 먹는 행위'에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고 말도 못 하게 여위어 갔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몸의 이상기류에 엄마는 공포를 느꼈다. 현관문의 걸쇠를 열어놓기도 하고, 누군가가 어떻게든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새시에 자물쇠를 빼놓기도 했다. 혹시나 본인이 아무도 없는 집안에 혼자 쓰러졌을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가뜩이나 겁이 많고 소심한 엄마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휘감았다. 그리고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쉼 없이 일하던 엄마의 병가가 시작되었다.




지난가을의 어느 날, 근무시간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기운이라고는 싹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응급실을 가야겠다고 말하던 엄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회사에 바로 얘기를 하고 바로 친정집을 향해 숨이 넘어갈 듯 뛰어갔다.


그 전날부터 화장실을 오가느라 밤잠을 설친 엄마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어 보였다. 엄마를 부축해서 다급한 마음으로 응급실을 찾았으나 하필 전공의 파업으로 최소의 의료진만이 남아있던 그곳에서는 (힘겨웠지만 그래도) 두 다리, 두 발로 응급실을 걸어 들어가는 환자는 응급환자가 아니었다. 진료를 거부하는 응급실을 뒤로하고 근처 내과로 겨우 발걸음을 옮겨서 급한 대로 약을 처방받고 수액을 맞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과에서 주는 약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고, 장 운동의 이상증상은 나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음식만 들어가면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던 엄마는 점차 음식을 먹는 것에 거부감을 내비쳤고 내가 사랑했던 오동통한 엄마의 손목이 점차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엄마는 이 병을 이겨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대학병원이나 응급실에서는 진료를 제대로 봐주지 않으니 위와 대장을 전문으로 본다는 개인 또는 중형병원을 있는 대로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먹는 양이 현저히 줄었고, 심지어 밥을 반 공기도 제대로 먹질 못하니 집 근처 내과에 이틀에 한 번씩은 출근도장을 찍으며 수액 링거를 맞아야 했고, 나름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위와 대장내시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저히 원인을 잡아낼 수 없었다. (마지막에 찾았던 강남의 한 병원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치료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던 엄마를 약간 호구로 보았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싼 검사와 건강보조제 팔이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 내 짝꿍은 엄마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고,

엄마의 병은 나을 듯 낫지 않은 채 수개월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2025년이 찾아왔다.




2025.08.15.

Elle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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