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병가(2)
짧은 일정으로 떠났던 일본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던 날 저녁이었다.
집에서 짐들을 정리하고 한숨 돌리던 찰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살짝 얼이 빠진 듯한 아빠의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구나를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아빠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한테 전화 좀 해줄 수 있니?"라고 하셨다. 불현듯 울컥 올라오는 두려움을 부여잡고 애써 담담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엄마가 집 근처에 백화점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가,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핑 도는 바람에 주저앉았다고 했다. 주변 도움으로 겨우 몸을 일으켜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도저히 집까지 못 갈 것 같다며 300km 넘게 떨어져 있는 아빠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알겠다고 하고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와중에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우리에게는 미안해서 바로 전화는 못했다는 엄마. 내 전화에 울먹이던 엄마는,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다고, 백화점 정문 쪽으로 택시만 좀 불러주면 된다고 했다. 난 화가 났다. 움직이기 힘들다면서 택시를 어떻게 타고 간다는 거냐고 큰소리를 냈다. 우리가 갈 테니 백화점에 1시간 정도만 앉아있어 보라고. 하지만 엄마는 한시라도 빨리 집에서 좀 누워있고 싶다며 택시를 불러달라고 거듭 고집을 부렸다. 결국 엄마의 요구대로 택시를 호출하면서, 동시에 우리도 엄마네로 출발했다.
친정으로 가는 내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의 엄마의 증상은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증상이었다. 나와 짝꿍이 우울증과 번아웃, 공황장애를 앓았을 때의 바로 그 모습이었던 거다.
그렇다. 엄마의 병의 원인은 바로 우울증과 외로움, 불안증과 신경과민이었다.
언제나 함께였던 가족들이 제각각의 공간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그간 엄마는 그녀의 보금자리에 온전히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
시작은 아빠였다. 아빠는 백화점 일로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리며 스트레스성 아토피 피부염을 십수 년을 앓아오다가 도저히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는 상태까지 가버렸다. 그의 어깨에 주렁주렁 달린 스트레스와 피로인형을 던져내어야 건강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아빠는 세 모녀를 서울에 두고 자신의 형제자매가 있는, 타지이지만 완전한 이방인은 아닐 수 있는 광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아는 한에서는 결혼 전 1막, 결혼 후 2막에 이어) 전보다 조금은 마음 편한 자유가 허용되는 인생의 3막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아빠가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어도 엄마 곁에는 우리 자매가 있었다. 서로 투닥거리기는 했어도 엄마는 우리 둘을 언제나처럼 보살피고 챙겨주셨다. 그리고 일 년쯤 지났을까. 아빠에 이어 내가 둥지를 떠났다. 결혼을 한 것이다. 그래도 엄마 곁에는 여전히 동생이 남아있었다. 매일 야근이 일상이었던 동생이긴 했지만, 그래도 같이 사는 이가 집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혼 후 3년쯤 지나고 동생이 돌연 영국으로의 워킹홀리데이를 선언했다.
엄마는 이제 정말 그 작은 듯 큰 집에서 가족의 부재를 느끼며 혼자 지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엄마는 지금보다 젊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주부학교에서 못다 한 학업을 마치기도 하고 친척이 시작한 식당 사업에 오픈 멤버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바쁜 일상에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어 보였다.
이런 엄마의 집에 다시금 동거인이 생겨났다. 막내이모가 우리 집으로 왔던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람이자 생각만으로도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이. 글 서랍장에서 끝을 맺지 못하고 있는 이모에 대한 글은 언제쯤 눈물을 이기고 완성될 수 있을까.)
이모가 우리 집에 왔던 건 이모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였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하지만 한동안 가족 모두와 인연을 끊고 외로움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던 이모는 그간의 시련을 본인의 몸 안에 암세포로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나 보다. 그 자그마한 몸을 가득 채워버린 암이라는 녀석은 이모의 삶을 좀먹고 있었고, 여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3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야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모는 항암치료를 위해서 대학병원이 가까운 나의 친정집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이때부터 엄마는 하루하루 암과의 사투를 벌이는 막내이모를 곁에 두고 보살피기 시작했다.
엄마의 정성스러운 간호, 가족 모두의 간절한 기도.
오랜만에 가족이라는 따사로운 울타리 안에서, 모두의 관심과 사랑 안에서 병마를 이겨보려 마지막까지 애쓰던 이모는 결국 1년 반을 채 넘기지 못한 채 가족의 품을 떠났다.
사랑하는 동생을 떠나보낸 엄마에게 공허함이 짙게 드리워있었다. 그 공허함은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고 위로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시간 날 때마다 그저 엄마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저 하루빨리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동생이 돌아왔다.
2025.08.17.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