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중독자(1)
쫄깃쫄깃, 쫀득쫀득, 달짝지근, 달콤 짭짤, 달콤 쌉싸름,
파사삭, 포실포실, 보들보들, 진득진득, 퐁신퐁신, 사르르, 꾸덕꾸덕...
내가 사랑하는 이 모든 식감과 맛의 저변에는 쌀, 밀가루, 설탕이 있다.
그리고 쌀, 밀가루, 설탕 모두를 아우르는 탄수화물이라는 녀석은 전 세계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열렬히 추종하는 먹거리임이 분명하다.
나 역시 매일매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이 맛과 식감 중 단 하나라도 만나야 했다. 이들로 인해 행복이 내 안에 퍼지는 것만 같았고,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저만치 도망가버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독한 「탄수화물 중독자」였다.
내가 이토록 탄수화물과 격렬하게 사랑에 빠지게 된 때가 언제였을까.
시간을 거슬러거슬러 올라가다가 깨달을 수 있었다. 탄수화물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학연수 시절부터 시작되었음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여행이자 배움의 길이었고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들을 한껏 안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외로웠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외로운 마음의 허기를 먹는 행위로 채우려 하기 시작했고, 이 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어졌다.
나의 첫 홈스테이는 귀여운 여자아이 둘과 그들의 부모가 사는 작은 집이었다.
한국에 있으면서 직접 영국에서 묵을 숙소를 구하기는 꽤나 번거로웠고 설마 학원에서 학생들한테 이상한 집을 홈스테이로 소개해줄리는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어학원을 통해서 소개받은 곳이었다. 담당자가 보내온 홈스테이 소개 레터에 따르면, 이 집에는 어른 둘과 사랑스러운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이 있다고 했다. 흡연자가 없고 애완동물도 없으며 학원도 도보 15분(이 정도면 가까운 거리에 속했다.) 거리라는, 내가 요구했던 조건들과 꽤나 잘 맞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 집에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호스트맘이었다.
나의 첫 호스트맘은 영국 국적의 남편과 국제결혼을 한 필리핀 분이셨다. 원어민과 소통하면서 영어를 배울 요량으로 자취보다 더 돈이 들기는 하지만 홈스테이를 택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히 홈스테이 가족은 원어민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이렇게 (나보다는 당연히 영어를 잘하지만, 내가 원하던 발음은 아니었던) 동양인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기대에는 어긋났지만 그래도 우리의 첫 만남은 제법 순조로웠고, 겨울을 벗지 못한 봄밤의 칼바람을 맞으며 혈혈단신 미지의 나라에 입성한 이방인을 따듯하게 맞이해 주던 가족들이 그저 고마웠다.
그리고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하고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아이들과 놀거나 호스트대디와 이야기를 나누고 친하게 지낼수록, 호스트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내가 본인들 가족과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에 질투를 느꼈던 거다. 심지어 그 집에 자주 찾아오시던 그분의 시아버지 되시는 분도 나와 꽤나 많이 친해져서 언어의 장벽이 있어도 서로 손짓 발짓해 가며 만나면 즐거운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그녀가 나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유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본 적이 살면서 있었던가.
나는 이 상황이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최대한 그녀와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점점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끼니를 거르기도 일쑤였다. 그리고 이 외로움, 몸과 마음의 허기짐을 점점 방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 과자, 초콜릿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는 종류별로 다양한 마트들이 즐비했다. Sainsbury, Morrison, Waitrose, M&S, TESCO... 오전 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루에 한두 군데씩 마트를 돌아가며 들러서는 주전부리 두어 개를 꼭 손에 쥐고 집으로 들어가야 마음이 놓였다. 외롭고 쓰린 마음을 달콤하게 채워 줄 무언가를 찾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와 함께 하숙집으로 들어온 달다구리들은 비어있던 내 방 옷장의 서랍 한편에 쌓여갔다. 그러다가 쓰릿한 외로움이 갑작스레 내 마음을 점령할 때면 여지없이 초콜릿, 과자, 빵, 케이크들이 서랍에서 나와서 나의 빈 속을 달콤하게 채워주었다. 적어도 이들이 입에서 녹아내려지는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에도 달콤함이 스며들었고, 그 당시의 나에게는 놓칠 수 없는 행복이 되었다.
애초에 누군가의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었던 내가, 심지어 아는 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 이토록 미움을 받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나니 마음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결국 어학원에 사정해서 홈스테이를 바꾸었고, 전화위복이 이런 건가 싶게 새로이 만난 나이가 지긋한 멋진 백발의 홈스테이 맘과는 내 영국 여정의 끝까지 함께하며 '찐' 가족과 같은 애틋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다.
결국 다시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되었으나 이미 길들여진 탄수화물의 맛과 식감은 내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심지어 내가 이렇게 빵과 초콜릿, 과자를 좋아하는 걸 아시고는 매번 장 보러 가실 때마다 내 간식을 사서 부엌에 놔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점점 포동포동 살이 오르게 되었다. (그분 입장에선 내 첫인상이 깡마른 동양인 여자애였기 때문에 뭐라도 먹여서 살을 찌워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 마음이란 만국 공통인가 보다.)
그리고 이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탄수화물 그 자체에 중독이 되었다.
이 녀석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2025.08.26.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