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서블? 미션 컴플리트! (2)
이건 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이 절차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일단 대화 백업 확인을 누르고, 전에 쓰던 휴대폰의 카카오톡으로 발송된 백업 메시지를 눌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전 휴대폰의 백업이 완료 메시지를 띄운 걸 확인하고는 새 휴대폰에서 백업된 대화를 불러옴으로써 카카오톡의 설치를 1시간 반 만에 어렵사리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카카오톡 아이디 찾기, 비밀번호 재설정 그리고 대화 백업.
이 3가지 과정에 소요된 90분 동안, 내 감정은 ‘미친 X이 널을 뛰는 것처럼’ 미쳐 날뛰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응, 그거 한 번 눌러봐. “, ”그렇지, 그렇지! 잘했어. “라고 했다가, 갑자기 “제발 말 좀 들어!”, “아니, 그건 가만히 두라고 쫌!!!", "한 명만 눌러, 한 명만!!!!!", "카메라 좀 제대로 들고 있으라니까????!!!!"라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질 않나, 그러다간 이내 또 이 상황 자체가 갑자기 우습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에 대한 허탈함에 헛웃음이 새어 나와 낄낄거리기까지.
어느샌가 퇴근을 하고는 슬며시 옆에 앉아있던 짝꿍은, 지킬 앤 하이드 급으로 오락가락하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 지켜보다가 무서웠는지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카카오톡이 제대로 돌아가는 걸 확인한 나는 이제 체력이 나락까지 떨어졌다.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그럴 의지가 없었다. 그들에게 오늘 해결해야 하는 앱 로그인 건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은행 앱'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가 거래하는 은행이 하나임이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자, 이제 2차전이 왔다.
엄마가 쓰는 은행 앱을 누르면서 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화면을 보니 OO은행 앱을 누르면 바로 구글플레이스토어가 뜨면서 구글 로그인을 요구했다.
자, 이제 여기서부터는 동생과 짝꿍의 도움이 필요했다. 구글 이메일은 동생이 만들어주었던 거라 8,000 킬로미터 거리의 동생을 짝꿍의 페이스톡으로 소환해서 이 작금의 사태를 보여주며 SOS를 쳤다.
네가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너의 흔적이 잔뜩 묻어있는 이 구글 이메일 계정의 비밀번호가 무어냐 물었다. 엄마가 서울 올라왔을 때 샀으면 바로 옆에서 10분이면 끝냈을 일을 이렇게 몇 시간을 목청이 떨어져 나가도록 소리치고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신세 한탄도 섞어가며 말이다.
카톡에 이은 휴대폰 인증을 완료하고 어찌어찌 겨우 열린 은행 앱은 개인정보 확인을 위한 인증 문자를 발송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자가 인증이 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발송된 은행의 문자 모두 인증이 거부되었다. 그 와중에 생각나는 비밀번호를 무턱대고 팡팡 눌러대는 아빠 덕분에 은행 앱의 비밀번호 오류가 3회 차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또 나의 버럭 타임.
“그만 좀 누르라고!!! 이거 5회 되면 아예 접근이 막힌단 말이야!!”
버럭버럭 입으로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문제인거지? 왜 이러는 거야?‘라는 의문이 뱅글뱅글 맴돌았다.
화면을 다시 자세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통 초점을 못 잡는, 하지만 딸의 버럭에 시무룩함과 울컥함이 얼굴에 번진 카메라 기사(아빠)를 겨우 어르고 달래서 문자 화면을 클로즈업해 보았다. 그리고는 인증 문자메시지마다 앞에 빨간 느낌표가 붙어있음을 발견했다.
내 머릿속에도 느낌표가 떴다.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엄마에게 어디로든 전화를 한 번 해보라 주문했다. 그러자 엄마의 휴대폰에서 ”이 휴대폰은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발신이 제한되었습니다. “라는, 낯선 듯 친숙한 여성의 음성이 새어 나왔다.
드디어 문제점을 발견해 냈다. 엄마의 휴대폰은 수신은 되지만 발신이 차단된 상태였던 것이다. 카톡이나 구글은 인증번호를 받아서 그걸 입력하면 본인 인증이 가능했지만 은행은 인증문자를 그대로 전송해야 인증이 완료되는 터라 전화의 발신기능이 차단되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엄마도, 아빠도, 나도, 짝꿍도 모두 에너지란 에너지는 모두 고갈되고 말았다.
(고맙게도) 아빠가, 내일 엄마랑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해결하면 될 거 같다며, 고생했으니 내일 출근하려면 이제 얼른 쉬라는 말로 오늘의 작업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하지만 요동치는 감정으로 이미 잠이 저만치 날아간 나는, 침대에 누웠어도 잠이 쉬이 들지 않았고, 이 문제가 엄마 휴대폰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통신사를 통해 구입해서 쓰던 휴대폰을 자급제로 바꾸면서 유사한 오류가 있었던 사례를 찾아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나 비슷한 오류를 겪었던 분들이 꽤나 많으셨고, 이게 통신사를 통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가 완료되지 않아서 발생한 현상임을 알아냈다. 굳이 대리점에 다시 가지 않아도 114 전화로 쉽게 해결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누워서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아침 9시 이후에 114에 전화를 해서
“어제 휴대폰을 자급제 폰으로 바꾸었는데,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발신은 안되고 수신만 돼요.”
라고 문의를 해보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성미 급한 아빠. 통신 오류는 24시간 상담이 가능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그는, 나와 엄마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엄마 휴대폰으로 114에 전화를 걸었다 한다. 그 덕에 엄마의 발신제한이 단 5분도 걸리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은행 앱 인증까지 마치며 드디어 엄마가 자주 사용하는 앱들의 로그인과 인증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 중에 문득문득 몇 가지 사실이 내 마음을 떠돌았다.
우선 그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와 아빠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이었다.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이 입으로 불을 내뿜긴 해도 이렇게나마 전화로라도 가르쳐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딸들과 멀리 떨어져서 지내고 있는 요즘,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키오스크 같은) 신문물을 만나 괜스레 얼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나 아빠가 아닐까 하는 걱정 말이다. 이런 생각에 머리를 지배할 때면 여지없이 그들에게 ”이런 거 무서워하지 말고 피하지도 말고 좀 배워둬!" 라며 괜한 쓴소리를 내뱉게 된다.
여기에 나 역시 아무리 기계와 친하지 않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해도 '나의 노후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산물과 절대 멀어지면 안 되는데'라는 조바심과 더불어 싫어도 참고 이들과 친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사실 엄마에게 기계치라고 뭐라 뭐라 하지만, 나 역시 기계와 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리곤 이 사태(?)로 이끈 내 성급함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건 바로 엄마와 나를 연결하고 있는 소통의 끈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휴대폰의 필요성은, 나보다는 타인에 무게가 맞추어져 있다. '내'가 휴대폰이 없을 때 느끼는 불편함보다는 휴대폰이 없는 누군가를 곁에 두었을 때 나의 불편함은 곱절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한창 아플 때에, 엄마가 나에게 연락을 하는 용도보다는 우리 가족이 엄마의 안위를 시시각각 확인하는 것이 엄마의 휴대폰의 주목적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난 엄마의 손목에 휴대폰을 수갑처럼 채워두려고 했고, 전화를 잘 받지 않는 엄마에게 쓰디쓴 잔소리를 한껏 날리고는 했다. 이번에 휴대전화를 급하게 새로 바꾼 것도 사실은 엄마의 손목에 더 단단한 끈을 묶어둘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런 딸의 집착스러운 바람과 성급함이 불러온, 끝없는 고성으로 울그락불그락하던 분위기와 이런 날 선 분위기를 스멀스멀 녹여주던 종종 웃음으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던 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난과 역경의 순간도 어느새 마무리되고, 결국은 '애썼다, 고생했다' 서로를 토닥이며 우리 가족의 여름밤은 해피엔딩으로 저물었다 한다.
2025.08.25.
Ellen Yang